"쌀 개방 피할 길 없다"…정부, 지방선거 직후 정면돌파

입력 2014-04-10 20:59  

관세화 유예 연말 끝나

9월 한국입장 WTO 전달…국회 동의 얻어야
'높은 관세 전략' 지금 짜야 농가 피해 최소화



[ 조진형 기자 ]
정부가 오는 6월 지방선거가 끝난 뒤 쌀 관세화 문제를 매듭짓기로 했다. 연말로 종료되는 관세화 유예 기간을 연장하지 않고 쌀시장을 개방하겠다는 것.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지만 시기적으로나 실리적으로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오히려 쌀 농가에 피해를 안길 수 있다는 공감대가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쌀시장 개방 피할 수 없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0일 “세계무역기구(WTO)가 한국의 쌀 관세화 연기 요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만큼 이르면 7월께 관세화 방안을 마련해 국회에 보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쌀시장 개방을 늦출 수 없다는 점은 농민들 사이에서도 상당 부분 공감대가 확보돼 있다”며 “쌀 개방으로 농가가 피해를 보지 않게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쌀 관세화를 늦추는 대가로 늘려온 의무수입물량(MMA)이 국내 공급과잉을 야기해 오히려 쌀 농가에 피해를 주고 있고 궁극적으로 관세화라는 ‘완충장치’를 통해 시장을 개방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 한국의 의무수입물량은 1995년 5만1000t에서 2005년 22만6000t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는 국내 소비량의 8%에 해당하는 40만9000t으로 급증한 상태다. 때문에 쌀시장 개방에 강력 반대하는 농민단체들의 목소리도 예전보다는 약해졌다. 쌀 시장 개방 대신 관세화 유예로 지금보다 의무수입물량을 더 늘릴 경우 사실상 국내 쌀산업이 공멸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WTO에 웨이버 조항(예외적인 상황에서의 의무면제) 적용 요구도 사실상 어려워졌다. 한국에 앞서 관세화 유예 기간이 종료된 필리핀은 쌀 의무수입물량 2.3배 증량 등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면서 WTO에 관세화 유예를 요청했지만 미국 캐나다 호주 태국 등 WTO 회원국들은 이를 거절했다.

이정환 GS&J인스티튜트 이사장은 “필리핀 사례는 한국도 웨이버 요청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며 “WTO에 합리적이면서 높은 수준의 관세를 부여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해야 농가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WTO에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시한은 관세화 유예 기간이 종료되기 3개월 전인 오는 9월이다.

◆국회 동의가 관건

정부가 쌀 관세화 문제를 서두르고 있는 배경에는 올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도 있다. 한·중 FTA를 타결짓기 위해 일정 부분 농산물 시장 개방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쌀시장 개방 문제를 먼저 매듭지어 놓을 필요가 있다는 것.

문제는 국회다. 여야 의원들은 대체로 쌀시장 개방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지만 농촌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의원들의 지역민심 ‘눈치보기’와 일부 농민단체의 반발 등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행 ‘통상조약의 체결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 10조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통상조약의 중요사항을 변경하는 경우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보고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어 WTO와 쌀 관세화 협상이 타결될 경우 최종적으로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쌀 관세화 사항은 국회 보고를 거쳐 WTO에서 확정된 뒤 비준을 거쳐야 한다”며 “국회 보고 과정과 국내 의견 수렴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벌어지겠지만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진통”이라고 말했다.

■ 쌀 관세화

쌀 시장을 개방하되 국내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 1995년 시행된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정에서 한국은 전통적 주식인 쌀에 대해 ‘10년간 관세화 예외’를 인정받았다. 2004년에는 협상을 통해 쌀 의무수입 물량을 늘려주는 대가로 올해 말까지 ‘10년간 관세화 유예’를 받았다.

세종=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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