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과 파벌의 공생…사라진 '금융본능'

입력 2014-04-17 21:54   수정 2014-04-18 03:50

금융산업, 올 것이 왔다 (中) 관치·분파주의가 부른 위기

3년 주기로 회장 바뀌어
줄서기 관행…정상경영 삐걱



[ 박신영 기자 ] “이번엔 빠지시는 게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될 듯합니다….”

지난해 상반기 어느 민간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CEO) 선임 절차가 진행되던 당시 회장 후보로 하마평에 올랐던 관료 출신의 한 인사가 정부 고위관료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미 다른 관료 출신 후보가 회장으로 내정됐다는 얘기였다. 이 금융회사의 CEO추천위원회가 후보 심사를 진행하던 시기였다.

금융회사의 내부승계프로그램이 낙하산 인사 앞에서 무력해지는 전형적인 사례다.

○반복되는 낙하산 인사로 줄서기 횡행

지난해부터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는 KB금융그룹은 회장이 바뀔 때마다 감독당국의 전임자에 대한 사퇴 압박과 후임자의 낙하산 논란이 이어졌다.

황영기 전 회장은 감독당국으로부터 ‘직무정지’에 상당하는 중징계를 받아 자리에서 물러났다. 우리금융 회장 및 우리은행장으로 재직하면서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냈다는 이유였다. 회장대행을 맡은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도 차기 회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감독당국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다. 어윤대 전 회장은 취임 당시 국가브랜드위원장을 맡았던 탓에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임영록 회장도 전 재정경제부 차관 출신이다.

우리금융그룹도 때마다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박병원 전 우리금융 회장은 전 재정경제부 차관 출신이었고, 이팔성 전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캠프에서 경제특보를 지냈다. 임종룡 농협금융그룹 회장도 직전까지 국무총리실장을 맡았다. 강만수 전 산은금융그룹 회장은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다.

이에 대해 각 금융그룹 내부의 시선은 곱지 않다. 3년 주기로 회장이 바뀌는 과정에서 정치권과 금융당국 등이 자기 사람을 수장에 앉히기 위해 조직을 들쑤시다 보니 업무 전문성과 책임감에 둔감해졌다는 설명이다.

국민은행의 한 영업점장은 “CEO가 바뀔 때마다 임원진이 전면 교체됐다”며 “경영진이 수시로 바뀌면서 업무 사각지대가 생겼고, 비리사고 발생의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내부 파벌과 낙하산 CEO의 공조도

관치금융은 금융사 내부의 파벌 간 대립을 더 악화시킨다. 낙하산 CEO의 경우 조직에 대한 정보나 전문성이 부족하다 보니 이 틈을 타 내부 파벌 간 ‘권력 쟁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비서실과 전략, 인사를 담당하는 부장급 이상은 조직 내에서 부침이 심하다. 낙하산 CEO가 물러나면 후선으로 배치되고, 다음 CEO가 들어서면 다시 복귀하는 일이 허다하다. 국민은행에선 옛 국민은행과 옛 주택은행 출신들이, 우리은행은 옛 상업은행과 옛 한일은행 출신들이 인사철마다 물밑 경쟁을 치열하게 벌인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출신 성분에 따라 인사가 달라지니 조직원들이 줄서기에 바빠 회사 발전을 고민하기가 힘들다”고 비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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