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수 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기우에 대한 이런 해석이 틀렸다는 게 증명되고 있습니다. 여객선 세월호 참사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어서입니다.
더욱이 이번 세월호 대참사의 최대 원인으로 천붕에 대한 기우가 절대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며 그것으로 부터 아주 멀리 ‘도망’가 있었던 게 꼽히는 실정입니다.
여러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실제 세월호의 참사는 배의 출항과 항해 침몰상황 등 거의 전 과정에서 ‘안전 문제에서 도망쳤다’는 사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우리는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해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세월호 침몰과 관련해 그동안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을 용어로 정리했습니다.

※재선의무 = 선원법 10조. 선장은 화물을 싣거나 여객이 타기 시작할 때부터 화물을 모두 부리거나 여객이 다 내릴 때까지 선박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세월호 선장은 하지만 모든 승객을 전부 내 버려둔 채 배에서 가장 먼저 ‘도망’갔다. 뉴욕타임스는 이에 대해 “세월호 선장이 102년 전 침몰한 타이타닉호로부터 이어져 온 배와 운명을 같이한다는 자랑스런 전통을 깼다”고 비난했다. 사법당국은 선장에 대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혐의 적용을 검토 중이다.
※퇴선(退船)명령 = 세월호 침몰 당시 관계자들이 승객의 탈출명령 판단을 빠르게 내리지 못해 구조에 필요한 '골든타임'을 허비하며 피해를 키웠다는 정황이 나오고 있다. 해운용어 퇴선은 선박이 더 이상 항해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거나 선박이 위험에 처해 이른바 배를 포기하고 이탈하는 상황을 말한다.
국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현행법에는 '퇴선 명령'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명시적인 조항이 없다고 한다. 다만 선박안전법 31조와 해사안전법 45조에 규정된 선장의 포괄적인 권한 중 퇴선 명령도 포함하는 것으로 법조계와 해운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골든타임 (Golden Time) = 사고나 사건에서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초반 금쪽같은 시간 (1~2시간)을 지칭한다. 응급처치법에서 심폐소생술(CPR)은 상황 발생 후 최소 5분에서 최대 10분 내에 시행돼야 한다. 항공사의 경우 운명의 90초 룰이 있다.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90초 내에 승객들을 기내에서 탈출시켜야 하는 한다는 것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세월호는 목적지인 제주에 교신 채널을 맞추고 진도 해역을 운항하다가 최초 신고를 제주 VTS에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실수로 “골든타임 11분이 허비됐다”는 지적이다.
※에어포켓 = 에어포켓은 배 안에 공기가 남아 있는 곳으로 침몰한 선박에서 유일하게 생존할 수 있는 공간으로 불린다. 군함이나 어선과 달리 여객선은 밀실 구조가 아니어서 에어포켓이 제한적으로 형성된다는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에어포켓은 항공용어로 쓰일 경우 비행 중인 비행기가 함정에 빠지듯이 하강하는 구역을 의미한다. 공중의 기류 관계로 공기가 희박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고 비행기가 여기에 들어가면 속력을 잃고 불안정하게 된다.
※하인리히 법칙 = 대형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그와 관련한 작은 사고와 징후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법칙이다. 일정 기간에 여러 차례 경고성 전조가 있지만 이를 내버려두면 큰 재해가 생긴다는 게 핵심.
미국의 트래블러스 보험사 소속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통계 작업을 하다 산업재해로 중상자 1명이 나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경상자 29명이 있었으며 역시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아찔한 순간을 겪은 사람이 300명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는 이 이론을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 (1931)이라는 책에서 소개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종합하면 세월호는 여러 징후를 무시하다 참사를 빚은 하인리히 법칙의 전형적 사례로 꼽힌다. 사고 이후 관련자의 증언을 통해 세월호에 크고 작은 징후가 여러 가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어서다.
예컨대 청해진해운은 사고 2주 전에 조타기 전원 접속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밝혀졌다. 선사가 작성한 수리신청서에는 "운항중 'No Voltage(전압)' 알람이 계속 들어와 본선에서 차상 전원 복구 및 전원 리셋시키며 사용 중이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치 못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는 것.
세월호의 원래 선장인 신모씨의 부인은 "남편이 선박 개조 이후 여러 차례 선체 이상을 느껴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묵살됐다"고 언론에 털어놓기도 했다.
※밸러스터 (평형수) 탱크= 배의 아래쪽 무게를 늘려 안정적으로 항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평형수를 넣어주는 큰 물탱크를 말한다. 보통 선박 바닥에 실는다. 만약 배가 왼쪽으로 기울면 오른쪽 탱크에 물을 채워 좌우 균형을 맞춘다. 밀면 넘어지지만 곧바로 원 상태로 돌아오는 오뚝이의 원리와 같다.
MBC 보도에 따르면 평형수가 선박의 복원력, 즉 안전성을 높여주기 때문에 국제해사기구도 화물 적재량의 30% 이상 싣도록 권고한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호의 경우 평형수가 있으면 속도가 느려지고 기름 값도 많이 들기 때문에 평형수를 거의 채우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세월호는 선실을 증축하는 개조로 무게중심이 높아진데다 화물은 많이 싣고 평형수를 충분히 채우지 않아 선체 복원력이 낮은 상태에서 급선회 때 균형을 잃고 침몰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로딩플랜마스터 = 서울경제는 세월호의 경우 “1500만원에 불과한 화물 자동적재 안내 프로그램인 '로딩플랜마스터도 없이 눈대중으로 화물을 실었다가 대형 참사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로딩플랜마스터는 화물을 선적할 때 좌우 균형을 맞춰 자동으로 위치를 정해주는 프로그램. 밸런스 유지가 중요한 항공기나 선박 등에는 필수적인 장치로 꼽힌다.
이 신문에 따르면 중량을 따지지 않고 화물을 주먹구구로 실으면 선박이 한쪽으로 쏠리게 되고 이미 기운 선박은 작은 파도나 방향전환 등 미세한 조작실수에도 큰 사고를 낼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세월호는 인천항에서 출항할 때부터 이미 3~5도 기울었을 수 있다는 게 이 신문의 지적이다.
※라싱 (lashing 고박)고리 = 연합뉴스는 청해진해운의 자료를 인용해 “사고 당시 세월호에는 승용차 124대, 1t (적재가능 중량 기준) 화물차량 22대, 2.5t 이상 화물차량 34대 등 차량 180대와 화물 1천157t 등 총 3608t의 화물과 차량이 적재됐다”고 밝혔다. 또 출항보고서에는 실리지 않은 것으로 돼 있는 컨테이너가 CCTV 화면에 포착됐고 차량은 한도보다 30대를 초과했다“고 연합은 덧붙였다.
통상 세월호 같은 큰 배에 가격이 비싼 자동차를 실을 때는 배 바닥에 설치된 D자 모양의 라싱고리에 자동차 바퀴를 제대로 연결해야 한다. 또 컨테이너는 네 귀퉁이에 고정시키는 핀을 고정시켜야 한다는 것. 그러나 대부분 그냥 적재하고 만다는 것이 해운업계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세월호의 경우 화물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아 급선회 과정에서 화물이 한쪽으로 쏠렸을 것이라는 추측마저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정조시간 = 구조상황 설명에서 자주 등장하는 바다에서 밀물과 썰물이 바뀌는 과정에서 물살이 정지한 것처럼 느려지는 때를 말한다. 대략 30분에서 1시간 정도 이어지는데 6시간 주기로 바뀐다. 관련해 파도가 잔잔하고 조류의 속도도 느려지는 때를 말하는 ‘소조(小潮)기’란 말도 있다.
※변침(變針) =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고 있다. 여객선이나 항공기 운행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로 항로를 변경한다는 뜻. 세월호 침몰이 일어난 지점도 변침점으로 목포∼제주, 인천∼제주로 향하는 여객선이 항로를 바꾸는 곳이다. 인천에서 제주로 항해할 때는 병풍도를 끼고 오른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가고 있다.
※객실과 격실 = 객실은 승객이 머무는 공간이고 격실은 이중으로 된 방이나 공간을 말한다. 유조선이나 화물선, 잠수함 등이 격실 구조가 많다. 외부 충격으로 일부가 파손돼도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배가 침수됐을 때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아주는 문을 수밀 (水密) 문으로 부른다. 세월호는 지난 2월 해양경찰 특별 점검에서 수밀문의 작동 불량이 지적됐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조타기 = 선박의 방향을 조종하는 장치로 자동차로 치면 운전대다. 조타기를 돌리면 선박 뒤쪽 끝에 달린 방향타가 움직여 선박의 진로가 변경된다. 세월호 조타수 조모씨는 "조타기를 돌렸는데 조타기가 평소보다 많이 돌아갔다"며 조타기 결함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구상선수 = 세월호가 마지막까지 수면 위로 모습을 보였던 부분이다.
※리프트백 = 배 등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것을 막기 위한 공기 주머니를 뜻한다. 세월호도 약 35t을 견딜 수 있는 리프트 백이 3개 달려 있다.
※흘수선 (吃水線·water line) = 선체가 물에 잠기는 한계선을 말한다. 항행 안전상 허용된 최대의 흘수선을 만재 (滿載) 흘수선으로 불리며 이를 초과하면 안 된다. 배 외관에 확연히 다른 색깔로 칠해져 있어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플로팅 도크 (floating dock) = 바다위에서 선박을 건조할 수 있도록 고안된 바지선 형태의 대형 구조물. 이번 세월호 인양에는 플로팅 도크가 바지선을 대체할 장비로 거론된다.
플로팅 도크는 해수면 아래로 최대 24m까지 가라앉힐 수 있고 최대 8만t 무게까지 부양할 수 있다. 길이도 335m에 폭은 70m로, 146m와 22m 크기의 세월호를 싣기에 충분하다.
※항해사와 조타수 = 항해사는 선박 운항을 맡은 사람으로 조타수에게 방향을 지시하는 등 지휘 역할을 수행한다. 조타수는 조타기를 조작하는 직원으로 항해사의 지시를 따르게 돼있다.
※구명벌 = 천막처럼 펴지는 둥근 형태의 구명보트. 비상 탈출 기구를 활용하면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구명벌은 선박이 물 속으로 가라앉을 때 수압이 가해지면서 자동으로 펴진다. 수동으로 끈만 풀러서 작동할 수도 있다.
세월호에도 구명벌 46대가 구비돼 있었다. 1대당 25명씩 탑승할 수 있어 모두 1150명이 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중 펴진 구명벌은 단 1대뿐으로 무용지물이었다.
한경닷컴 뉴스국 윤진식 편집위원 js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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