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인생학교…서로 가르쳐주는 '조직 문화' 만들어
샐러리맨과 밸류맨
돈 때문에 일하면 샐러리맨…봉급 이상으로 많은 가치 세상에 돌려주는 밸류맨 돼야
정직하면 살아난다
외환위기때 부도나기 직전 외국인 투자자 5000만 쾌척
"이랜드는 장부가 1개여서 투자"
[ 임현우 기자 ] “같이 했던 귀한 시간들을 그리워하며 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함께 일할 수 있게 돼 정말 기쁘고 감사합니다. 가족분들께도 제 고마움을 전해 주세요.”
이랜드그룹에서 퇴사했다가 지난해 재입사한 정희선 팀장과 가족들은 얼마 전 ‘깜짝 선물’을 받았다.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61)이 직접 문구를 적은 카드와 함께 사과세트가 집에 도착한 것. 더구나 선물을 갖고 온 사람은 택배기사가 아닌 그룹 비서실장(상무)이었다. 박 회장은 재입사자와 휴직자, 퇴직자, 그리고 각 사업부 추천을 받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정기적으로 선물을 보내고 있다.
카니발 미니밴 타는 회장님
박 회장은 재계에서 두 가지로 유명하다. 1980년 작은 옷가게에서 출발해 매출 10조원의 그룹을 일궈낸 ‘자수성가의 상징’이자, 외부에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져있다. 회사 설립 뒤 34년 동안 언론 인터뷰는 물론 국회의원이나 고위 관료와의 만남도 정중히 거절해 왔다. 현역 중진 국회의원 A씨가 학연·지연 등 온갖 연줄을 동원해 면담을 요청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대외활동은 지나칠 정도로 자제하는 대신 박 회장은 ‘카니발’ 미니밴을 타고 전국 곳곳의 매장을 수시로 돌고, 1년의 절반을 해외 출장으로 보내고 있다. 회사 경영에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외부 노출을 꺼리는 것과 달리 사내에선 사업부별 강연과 각종 행사를 통해 직원들과 꾸준히 스킨십을 하고 있다. 사내 강연에선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자신의 사업 경험에 책과 신문에서 얻은 지식을 가미해 몇시간 동안 청중을 몰입시키곤 한다.
스킨십과 함께 임직원들은 확실히 챙긴다. 직원 자녀 중 수험생이 있으면 “OOO군, 그동안 공부하느라 수고가 많았지요?”로 시작하는 카드와 함께 최고급 초콜릿을 보낸다. 2012년에는 임원들에게 “작은 글자가 잘 안 보이는 나이가 되었네요. 스마트폰으로 고생하는 것 같아 마음을 담아 선물을 보냅니다”라며 추천도서 e북을 가득 담은 최신형 아이패드를 선물하기도 했다.
회사는 ‘인생의 학교’다
“봉급 때문에 일하는 사람은 샐러리맨이고, 일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은 비즈니스맨이다. 그보다는 하늘의 소명 때문에 일하는 ‘콜링맨(calling man)’이나 자신이 받는 봉급 이상으로 많은 가치를 세상에 돌려주는 ‘밸류맨(value man)’이 돼야 한다.”
박 회장이 한 강연에서 직업정신을 강조하며 꺼낸 얘기다. 그는 회사가 단순히 돈을 받고 일하는 사무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성장시키는 ‘인생의 학교’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해 창립 33주년 기념식 때 은퇴하는 임원들에게 명예졸업장과 함께 메달을 걸어줬다. 회사를 ‘졸업’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식구들을 축복하기 위한 선물이었다.
이런 오너의 지론 때문일까. 실제로 이랜드 기업문화엔 학교와 닮은 구석이 적지 않다. 사업부문별로 연고전 버금가는 화끈한 응원전이 벌어지는 체육대회, 봄·가을의 소풍 문화, 수백권에 달하는 ‘회장님 추천도서’ 등이 대표적이다. 입사 때 지급되는 이랜드의 정장 블레이저는 직원들 사이에서 ‘교복’이라 불린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이랜드 직원들은 박 회장에게 감사 카드를 적어보낸다. 박 회장을 회사 오너라기보다 인생의 스승으로 생각하는 직원들이 많아 생긴 전통이라 한다. 외부인의 눈에는 다소 오글거리는(?) 광경이지만,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며 밀고 당겨주는 이랜드의 독특한 기업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손해 보더라도 정직해야 한다
“리조트를 인수한 뒤 카지노를 리노베이션해 근사하게 키워보면 어떻습니까?”(사이판 정부 측) “싫습니다. 카지노는 사이판의 가정들을 병들게 할 겁니다.”(박 회장)
2012년 이랜드가 사이판 PIC리조트 인수를 추진할 당시 사이판 정부 측은 이랜드가 카지노를 확장하길 원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단칼에 거절했다. 그가 임직원에게 늘 강조하는 덕목 중 하나는 ‘정직’이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박 회장의 어머니는 꼬마 박성수에게 늘 ‘나보다 여러 사람이 큰 이익을 보는 게 중요하다. 더 멀리, 더 크게 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한 강연에서 박 회장의 회고. “외환위기 때 부도가 나기 직전 외국인 투자자가 5억달러를 들고와 우리에게 10분의 1을 투자했다. 그런데 1년 동안 나머지 돈은 투자하지 않기에 ‘지금 헐값에 기업들을 살 수 있는데 왜 가만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나도 사고 싶지만 막상 사려 하면 장부가 두 개더라. 이랜드는 장부가 하나여서 투자했다’고 했다. 그때 또 한 번 깨달았다. 정직하면 언제나 손해를 보지만, 결정적일 때는 정직해서 살아난다는 것을.”
여동생과 역할 나눠 ‘손발 척척’
사실 이랜드는 박 회장 못지 않게 “베일에 싸인 부분이 많다”는 평가를 듣는 회사다. 상장 계열사가 거의 없고 재무구조나 인수합병(M&A) 자금 출처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그룹 덩치가 급속히 커지면서 최근에는 박 회장의 여동생인 박성경 부회장(57)이 외부와의 소통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박 회장은 큰 틀에서 청사진을 그리고, 박 부회장은 세부 방침을 점검하며 정부·재계·언론 등 외부와 교류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기자가 박 부회장에게 존경하는 기업인을 물었을 때 그는 “우리 회장님”이라고 답했다. 박 부회장은 오빠에 대해 “사람 만나 돈 쓸 일도 없고 평생 검소하게 양심을 지키며 사는 사람”이라며 “이랜드의 M&A를 놓고 여러 얘기가 나오지만 회장님은 몇십년 동안 경영하면서 한 번도 본인이 계획한 큰 그림에서 어긋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들 남매가 30년 넘게 잡음 없이 이랜드 경영을 이끈 원동력은 서로에 대한 ‘무한 신뢰’였음을 보여준다.
박 회장과 박 부회장 남매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화려한 패션이다. 박 회장은 환갑을 넘겼지만 딱딱한 정장을 입는 일이 없다. 20~30대 못지않은 과감한 옷을 즐겨 입는다. 젊은이도 소화하기 힘들어 보이는 화려한 원색 셔츠와 캐주얼 바지, 머플러, 페도라 등이 박 회장의 패션 아이템. 한때 미국 LA다저스 인수를 추진했을 정도로 ‘소문난 야구광’인 그는 야구모자나 야구점퍼도 애용한다고 한다.
박성수 회장 프로필
△1953년 3월1일생 △부인 곽숙재 씨와 1남1녀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1980년 이랜드(잉글랜드) 창업 △1986년 (주)이랜드 대표이사 △1998년 이랜드그룹 회장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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