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다가도 갑자기 눈물…2주 이상 신경과민땐 심리치료 받아야

입력 2014-04-26 07:05  

이준혁 기자의 생생헬스

세월호 참사에 악몽같은 하루하루…우울증에 잠긴 대한민국

부정적 감정도 전염
타인 불행에 동질감 느껴…불안·분노 열흘 넘게 이어져

차분히 일상으로
TV 뉴스 시청 줄이고 운동·규칙적인 생활 집중



[ 이준혁 기자 ] 지난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로 온 국민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소비활동이 줄어들고 외부활동을 자제하는 등 곳곳에서 침울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실종자 가족과 지인들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국민들도 긴장과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국민 상당수가 집단 우울증이나 트라우마(trauma·정신적 외상)에 시달리는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전염되는 불안·분노

직장인 장소영 씨(39)는 “사고가 난 날부터 거의 매일 뉴스를 보면서 자꾸 감정이 격해지는 걸 느낀다. 일이 손에 안 잡힌다. 마치 정신적 고문을 당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장씨는 “너무 슬퍼서 보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어둡고 찬물에 갇혀 있을 학생들 생각이 자꾸 나고, 소식이 궁금해 하루 종일 뉴스에 집착하게 된다”고 말했다. 주부 한모씨(53)는 “1주일째 안타깝고 답답한 소식만 보니까 불안하고 우울하다”면서 “가까운 사람들과 즐겁게 얘기를 나누다가도 세월호 얘기만 나오면 눈물이 난다. 웃으면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열흘째 TV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있는 시민들 중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례가 급격히 늘고 있다. 생존자 구조 소식은 없고 연일 사망자 수만 더해지면서 무기력감이나 허탈, 분노 등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홍진표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거의 매일 비관적인 내용과 감성적인 언론보도를 접하다 보면 신경이 예민하거나 정서가 불안정한 사람은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정상행동에서 벗어나는 우울·망상·신경과민 등의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TV 참사뉴스 시청 줄여야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과 교수(대한불안의학회 이사장)는 “과거 가족이나 연인을 잃은 경험으로 우울이나 상실감을 경험했거나 타인과 소통 없이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 동질감을 쉽게 느껴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우울증은 수렁과 같아서 한 번 빠져들면 쉽사리 헤어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채 교수는 “다른 사람의 불행에 공감하고 함께 슬퍼해주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이 과정에서 자신도 힘들어질 수 있다”며 “심할 경우 전문의와의 상담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고영훈 고대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방송에서 거의 매일 관련 보도를 하고 있지만 우울증 예방을 위해 방송 시청시간을 적어도 하루 몇 시간 이내로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소아·청소년을 둔 학부모라면 자녀가 세월호 침몰사고 뉴스에 지나치게 심취해 있지는 않은지 관찰하는 게 좋다. 간접 경험이라도 어린시절 정신적 충격은 성인이 되어 우울증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우울·불안 심리 극복하려면

전문가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주지 않고, 차분하게 일상으로 돌아오게 하면서 정신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생존자와 유가족을 비롯해 타인들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겪을 수 있다”며 “격한 감정에 휩쓸려 분노를 표출하기보다는 이성적인 생각과 행동이 필요한 시기”라고 조언했다. 이정섭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장은 “눈물이 계속 나거나 잠이 오지 않는 경우, 이전에 즐겨 했던 일들이 더 이상 재미가 없거나 우울 혹은 화나는 감정 반응이 상당히 심한 경우, 또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드는 증상 등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정신건강 전문의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이번 참사와 관련해 지난 24일 ‘정신건강 안내문’을 발표했다. 학회는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행동으로 △규칙적 일상생활 △해야 할 일에 집중 △운동·신체활동 △믿을 만한 사람과 느낌·생각을 나누는 일 △종교적 기도 △현재 내게 소중한 사람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권했다. 반대로 △사건 관련 뉴스에 대한 지나친 몰입 △불규칙한 생활 △하는 일 없이 멍한 상태 △과거 잘못한 일 떠올리기 △게임·술 등에 의존해 문제를 부정하거나 피하기 등은 마음을 더 괴롭게 하는 부정적 요소로 지목했다.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죽음을 초래할 정도로 충격적인 사고를 경험한 뒤 반복적으로 사고를 떠올리거나 꿈을 꾸며 심한 고통을 겪는 증상. 만성적인 우울·불안 증상을 보일 수 있고, 기억력 저하와 인지 장애를 겪을 수 있다.

도움말 홍진표 서울아산병원 교수,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교수, 고영훈 고대안산병원 교수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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