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개조 첫 단추 '官피아'부터 수술하라] 한경 기자들이 쓴 '한국의 경제관료' 다시 펴보니

입력 2014-04-27 20:48   수정 2014-04-28 10:32

모피아·밀월관계…2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 심성미 기자 ] 27세에 국가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한 Q씨는 20년 후 재정차관보로 재무관료 임기를 마쳤다. 46세에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Q씨에겐 바로 주택은행장, 제일은행장, 경남은행장의 자리가 주어졌다. 금융권에서 ‘인생 2막’을 화려하게 마무리한 그는 바로 중앙투자금융 사장, 한국투자신탁회사 사장 등 제2금융권 사장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며 환갑을 맞았다. 재무부 현역(YB) 20년, 전직 재무관료(OB) 20년, 모두 40년간 재무부의 울타리 안에서 화려한 공직생활을 보낸 Q씨는 65세에 은퇴했다.

최근 드러난 퇴직 공무원들의 산하기관·협회 낙하산 사례가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들이 1994년 5월부터 7개월간 70회에 걸쳐 보도한 기획 시리즈 ‘한국의 경제관료’(사진은 시리즈를 모아 발간한 책 표지)에 소개된 20년 전 사례다. 한국 경제관료 사회의 내부 시스템과 관료의 사고·행동방식을 샅샅이 해부한 이 책에는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낙하산 인사)’ 등 퇴직 관료와 현직 관료의 ‘끈끈한 밀월 관계’의 실상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당시 한국경제신문은 납세병마개를 제조하는 삼화왕관, 세왕금속 등의 사장과 전무 감사 등이 모두 세무공무원 출신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행태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병마개 2위 업체인 세왕금속엔 현재 국세청 출신 황재윤 사장이 앉아 있다. 소주 원료를 만드는 한국알콜산업의 지창수 현 회장은 1980년대 국세청 차장을 지낸 뒤 20년 넘게 회장직을 지키고 있다.

‘떠도는 인공위성’ 편에는 공무원들의 정년 보장을 위해 장관이 자리를 늘려가며 조직을 관리한다는 사실을 꼬집었다. 1994년 당시 상공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2~3급 국장 32명 중 본부 근무자는 절반인 17명이었고, 나머지는 산하기관에 파견돼 있었다. 4급도 총인원 159명 가운데 본부 인원이 89명(55.9%)에 불과했다.

이런 실상 역시 20년이 지난 뒤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4급 총인원 85명 중 본부 인원은 56명(65.8%)이고, 국장 30명 중 6명(20%)은 소속기관에 파견돼 있다.

‘특권적 이해관계를 혁파하라’ ‘관료형 정부에서 기업가형 정부로 바꿔라’ ‘부처 간 이기주의를 버려라’ 기획 시리즈 말미에 각계 전문가들이 경제 관료에게 바라는 점들이었다.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현재 경제 부처를 향한 쓴소리라고 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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