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지옥에 핀 연꽃

입력 2014-04-28 20:32   수정 2014-04-29 05:00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의로운 죽음은 언제나 뭉클하다.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분노의 역류’(1991년)에는 누구나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 황소(bull)라는 별명의 소방관 커트 러셀은 화재 진압 중 건물이 무너져 추락하던 동료의 손을 붙잡았다. 이대로 가면 둘 다 죽을 상황이다. 대화는 딱 두 마디다. “Let me go, Bull.” “You go, we go.”

영화 ‘클리프 행어’(1993년)에선 절벽에 매달려 조난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밧줄 하나에 여럿이 버틸 수 없음을 너무 잘 알기에 아래쪽 사람은 스스로 생명줄을 자른다. 350여년의 세계 등산사에서 수없이 이런 상황에 직면해왔기에 산악인들은 암묵적인 윤리가 있다. 등반보다 조난자 구조가 우선이며, 불가항력의 상황일 때는 동료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에베레스트는 등반 정체를 빚을 정도여서 산악윤리도 추락했다고 개탄하는 이들이 많다.

자신을 버리고 남을 살리는 의인(義人)이 극한 직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1년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다 목숨을 잃은 유학생 이수현 씨(당시 26세) 묘소에는 지금도 일본인들의 헌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양국 관계가 아무리 얼어붙어도 의인을 대하는 심정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성서에서 강도를 당한 유대인을 치료하고 돈까지 준 사람은 상류층 제사장도, 축복을 받았다는 레위인도 아니었다. 이교도 하층민이라고 천대하던 사마리아인이었다. 그래서 기독교 전통의 독일 프랑스 등에선 ‘선한 사마리아인 법’도 있다. 구조 위험이 없는데도 구조하지 않으면 불구조죄로 처벌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응급처치를 하다 과실로 피해를 입혔더라도 면책해주는 선한 사마리아 조항을 응급의료법에 담고 있다. 선의는 권장할 일이지 처벌할 일은 아니니까.

세월호 희생자 중 ‘살신성인 7인’을 의사자(義死者)로 지정하자는 청원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알바 승무원 박지영씨, 선상 커플 정현선·김기웅 씨, 단원고 교사 남윤철·최혜정 씨, 학생 최덕하·정차웅 군이 그들이다. 의사자로 지정되면 유족에게 2억원 남짓한 보상금과 의료 교육 취업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그런다고 이들이 살아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특히 정차웅 군이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준 것도 뭉클한데, 부친은 세금을 함부로 쓸 수 없다며 수의도 가장 싼 것을 썼다고 한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지옥 속에서도 연꽃은 그렇게들 활짝 피어났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