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노트] PTSD 선진국의 부끄러운 자화상… 살아남은 자의 슬픔

입력 2014-04-30 07:27   수정 2014-04-30 11:09

[ 김봉구 기자 ]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중략)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독일 극작가이자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만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가슴에 와닿게 표현한 문구는 흔치 않다.

PTSD는 생명을 위협당할 정도의 충격적 사고를 경험한 뒤 다양한 정신 증상을 드러내는 질환이다. 반복적으로 사고를 떠올리거나 꿈속에서 심한 고통을 겪는 경우 사고와 유사한 상황에 대한 지속적 회피나 정서적 마비, 지나친 각성 상태 등이 그 증상이다. 만성적 우울·불안 증상 또는 기억력 저하와 인지장애 등을 겪을 수도 있다.

보름이 지났지만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세월호 침몰사고가 집단적 PTSD를 부르고 있다.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하고 대통령이 용서를 구해도 트라우마는 남는다.

전문가들은 “PTSD는 증상이 한달 이상 지속될 때 판별할 수 있다. 현재는 ‘장애’가 아닌 ‘증상’으로 봐야 한다” 면서도 “사고 당사자와 피해자 가족뿐 아니라 직접적 연관이 없는 국민들도 ‘대리 외상’을 경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선 PTSD란 낯선 의학용어가 친숙한 말이 됐다.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 대구 지하철 화재 등 대형 참사가 이어졌기 때문. 특히 ‘한국형 PTSD’는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人災)에서 비롯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재로 인한 대형 참사는 자연재해보다 더 강한 분노와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안현의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재, 즉 사회적 재난의 경우 말 그대로 누구의 책임인지 자꾸 묻게 된다” 며 “세월호 참사로 불특정 다수의 국민이 ‘미안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연재해에 비해 더 많은 분노와 죄책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의 PTSD 연구는 지난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후 본격화 됐다. 정신의학 심리학 뇌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지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신경정신과)는 “대구 지하철 참사의 경우 10년 가까이 생존자와 피해자에 대한 추적연구를 하고 있다” 며 “이때를 기점으로 PTSD 연구가 활성화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대형 참사 피해자의 PTSD 증상을 다룬 국내 학자들의 논문이 국제 학계에 연달아 보고되고 있다. ‘PTSD 선진국’이라 할 만한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한 의료계 인사는 “대형 참사가 이어진 탓에 PTSD 관련 연구논문이 지속적으로 보고돼 왔다” 며 “세월호 사고로 인해 언론이 PTSD를 집중적으로 다뤘지 않느냐. 과연 우리나라처럼 PTSD란 전문용어를 일반 국민이 많이 아는 나라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안현의 교수는 “예기치 않은 사고로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면 일반적 권선징악 원리와 어긋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충격을 받는다. 또 피해자가 아동이나 청소년 같은 사회적 약자일 경우 충격이 더 크다” 며 “문제는 단지 PTSD에 국한되지 않는다. 애도나 상실감 같은 우울한 정서가 집단적으로 확산·전염되는 현상이 더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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