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으로 있는 지인에게 물었다. “다른 임원이 하는 업무와 겹칠지도 모르는 사업거리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 대답은 간단했다. “건드리지 않는다.” 혹 그 사업이 잘되면 자기 일 뺏어갔다고 욕할 것이요, 반대로 잘못되면 어설프게 건드려서 잠재시장을 망쳐 놨다고 대들 것이 뻔하다는 설명이었다.
대기업이 벤처기업에 사업 기회를 뺏기고 또 경쟁에서 패퇴하는 일이 벌어지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조직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내 일’ ‘네 일’이 따로 있고 ‘내 일’ 이외에는 눈을 감고 또 만용을 부리지 않는 보신주의가 바로 대기업병이다. 거대한 글로벌 기업이 대기업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성벽이 무너지는 것이다.
富의 재편, 모험기업에 기회
많은 회사들이 계속해서 성장하지 못하고 사양화되는 논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회사의 일’만 하다가 어느 순간 그 업종의 성숙도가 높아져 먹을 것이 없어지면 별도리 없이 작아지게 돼 있다. 시대가 바뀌고 산업이 변하면 회사 안에서 아무리 용을 써봐야 기회는 잡히지 않는다.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미래를 창조하려는 경영자라면 반드시 “창밖을 보라”고 말했다. 창밖이란 회사 내부가 아니라 큰 변화가 물결치는 세상이요 시장이다. 창밖을 내다보며 고객을 넘어 지금은 고객이 아닌 비(非)고객의 움직임까지 살펴야 한다. 우리 업종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건 당연한 일이고 우리와는 상관없는 업종의 최신 기술까지 훑어봐야 한다.
회사 내에 있으면 사실 위험회피 경향이 생기기 때문에 여간해선 금융거래처를 바꾸지 않으려 하고 세계적인 각종 정보에도 귀를 닫게 된다. 위험투자를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벽을 쌓는 것이다. 신생 기업들이 전하는 놀라운 혁신 소식들도 ‘남의 얘기’가 되고 만다.
드러커의 충실한 제자인 윌리엄 코헨은 창밖을 내다보며 리더들이 눈여겨봐야 할 구체적인 대상도 정리했다. △목표 시장 △문화·종교·인종 그룹 △사회적 계층 △인구 구성 △기업 구매자 △경쟁자 △기술 △경제 환경 △정치적 환경 △법률과 규제 환경△사회문화적 환경 등이다. ‘창밖’에는 기회의 씨앗을 품은 변화들이 이렇게 요동치고 있다.
외부지향으로 대기업병 고쳐야
기업이 창문을 걸어 잠그고 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개인도 그렇지만 기업도 스스로 편안하게 여기는 안락지대(comfort zone)가 있다. 사업이 한창 잘될 때는 이 안락지대가 바로 안전지대(safety zone)가 되니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게 옳다. 문제는 기술과 시장 변화, 국제교류 확대에 따라 이 안전지대가 자꾸 옮겨간다는 데 있다.
신생 기업엔 안전지대라는 것 자체가 없다. 그러니 끊임없이 그런 곳을 찾는 노력을 해야만 하는 절박함이 있다. 대기업은 이 절박함이 없다. 부(富)의 재편은 이렇게 이뤄진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희망이 적을수록 리더는 창밖을 봐야 한다. 저 밖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디로 또 떠나야 할지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 큰 회사를 경영하는 리더라면 이건 숙명이다. 한 번의 혁신이 답이 될 수 없다. GE 회장을 지낸 잭 웰치는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혁신은 끝없는 나그네 길이다.(Innovation is an everlasting journey)”
권영설 편집국 미래전략실장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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