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혁 기자 ] “관객들이 ‘개혁 군주’ 정조를 좋아하는 데다 이재규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영상에 매료된 듯싶습니다. 좋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하도록 이끈 것도 주효했고요. 이 영화를 계기로 지금까지 보여진 정조와 다르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 사극에도 괜찮은 배우라는 평가를 듣고 싶습니다.”
톱스타 현빈(32)이 밝힌 영화 ‘역린’의 흥행 비결이다. TV드라마 ‘다모’로 히트한 이재규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는 지난달 30일 개봉 후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320만명을 모았다. ‘역린’은 정조가 자신을 암살하려는 무리와 대결하는 이야기. 2011년 드라마 ‘시크릿 가든’으로 인기 최정상에 올랐을 때 입대한 현빈이 3년 만에 복귀한 작품이다. 12일 서울 사간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정조를 다룬 기존 사극들은 보지 않았어요. 똑같은 상황이 아니었고, 표현도 달라져야 한다고 믿었으니까요. 기존 사극 톤을 벗어나 가장 편하게 연기했습니다. 근엄하고 중후한 왕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젊은 왕을 표현했습니다. 아니, 왕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내 사람을 지키고, 내 할 일을 밀어붙이는 인간 말이죠.”
현빈의 등 근육을 포착한 도입부는 관객들에게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장면. 조선 최고의 신궁인 정조가 활시위를 당기려면 등 근육이 발달해야 하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에 부합한다고.
“시나리오에서 등 근육을 강조한 지문은 처음 접했어요. 왕은 으레 살집이 있고 햇빛도 안 받는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문무에 능한 사람이니까 목숨을 지킬 수 있었겠구나, 참으로 처절하게 살았구나 하는 점을 일깨워주기 위해 필요한 장면이었죠. 서너 달 동안 운동해 등 근육을 만들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웨이트 트레이닝 대신 맨몸으로 운동했을 것으로 상상했다. 그래서 영화에서처럼 자기 몸무게를 이용해 줄을 양쪽으로 당기는 등으로 운동했다. 미국 해병대에도 비슷한 방식의 운동이 있다고 한다. 활, 검술, 승마 등도 배웠다. 이런 노력은 세련된 영상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 여기에 이 감독은 곤룡포(임금의 옷)를 도르래로 끌어올리거나, 살수(자객)와 칼싸움을 하는 장면 등을 한 달여간 초고속 카메라로 담아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극 중 정조의 리더십이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군주의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정성껏 사람을 대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는 요즘 더 크게 와 닿습니다. 저도 영화 홍보를 위해 하루 스무 차례씩 무대 인사를 하면서 힘들 때면 이 말을 되뇌었습니다.”
현빈에게 자신의 ‘관객 동원력’이 어느 정도인지 물었더니 “무대 인사 도중 열 번을 봤다는 팬에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해줬다”고 했다. 군 생활을 통해서는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사람이나 작품을 대할 때 다른 시각으로 보려고 애씁니다. 20대 땐 앞만 보고 달리느라 생각하지 못했던 건데, 30대에는 시야를 더 넓히고 싶습니다. 연기에 대한 욕심도 더 내고 싶지만 조바심은 덜 낼 겁니다. 억지로 뭔가 꿰맞추려고 시도하면 그르치게 되니까요.”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