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소람 기자 ] “집에 진입했지만 안에 없었습니다. 체포에 필요한 자료만 확인하고 철수합니다.”
세월호 실소유주 비리를 수사 중인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은 지난 13일 저녁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장남에 대한 체포작전에 실패한 뒤 이같이 취재진에 알렸다. 수사팀은 전날 발부된 체포영장을 갖고 서울 염곡동의 대균씨 자택에 강제 진입했으나 그는 집을 비운 상태였다. 이곳에는 하루 종일 취재진이 몰렸고, 전 국민이 체포작전 계획부터 실패까지의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14일 검찰은 대균씨에 대해 전국에 지명수배령을 내렸다.
수사 중인 사안이더라도 국민의 알 권리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면 이를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 자세다. 그러나 이번처럼 범죄 피의자 체포의 전 과정이 전국에 생중계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통상적으로 검찰은 ‘체포’와 ‘압수수색’ 두 가지는 실제 영장집행 전까지 절대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영장이 집행되기도 전에 이를 청구하거나 발부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피의자가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수 있어서다. 법조 출입기자들도 이를 존중해 이 두 사안에 대해서는 영장집행 시점까지를 엠바고(일정 시점까지 보도 금지)로 보고 해당 규칙을 암묵적으로 지켜왔다. 국민의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범죄에 대한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이런 원칙이 이번 수사에서는 무너졌다. 검찰은 유 전 회장 일가가 소환 통보에 불응하자 체포영장 청구 등 강제구인을 시사했고, 수사진행 상황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언론도 국민의 공분을 등에 업고 ‘체포영장을 청구할 계획이다’ ‘청구한다’며 작전을 모두 생중계했다. 인천지검이 아닌 다른 검찰 관계자는 “체포계획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면 피의자가 당연히 도망가지 않겠느냐”며 비정상적인 상황을 걱정했다.
세월호 참사에 직·간접적으로 책임 있는 유 전 회장 일가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수사의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목적을 실현하기는 어려워진다. 16일 유 전 회장 소환조사가 예정돼 있는 등 앞으로 갈 길이 남았다. ‘텅 빈 집’을 더 이상 목격하지 않으려면 검찰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정소람 지식사회부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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