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사랑의 도시락

입력 2014-05-14 21:13   수정 2014-05-15 05:24

교실밖 서성이던 초교 점심시간
허기 채워줬던 '사랑' 잊지 못해

이병석 < 국회 부의장 lbs@assembly.go.kr >



“고슴도치같이 머리카락 하늘로 치솟은 아이/ 뻐드렁 이빨, 그래서 더욱 천진하게만 보이는 아이/ 점심시간이면 아이는 늘 혼자가 된다.” 교사시인 이영춘이 노래하는 ‘슬픈 도시락’의 시구를 되뇌며 나는 고이 감싸둔 빛바랜 양은도시락 하나를 꺼내들었다. 지금도 뚜껑이 잘 맞지 않는 오래된 양은도시락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나 가난해 도시락조차 싸올 수 없었던 제자를 따뜻하게 감싸준 김남숙 은사님의 사랑이 진하게 배어난다.

어린 시절, 나는 경북 포항의 영흥초등학교에 다녔다. 김남숙 선생님은 대구사범을 갓 졸업하고 학교에 첫 부임해 3학년 우리 반을 맡으셨다. 우리는 새로 오신 선생님을 두고 상냥하고 풍금을 잘 치신다며 입을 모아 재잘거렸다. 그런 선생님이 오신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선생님의 특별한 제자가 됐다.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다. 도시락을 싸갈 형편이 못 됐던 나는 여느 때처럼 아이들이 도시락을 꺼내는 순간 교실 밖으로 나갔다. 나와서 혼자 수도꼭지를 틀어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그리곤 교실 밖 화단에 쪼그리고 앉아 햇살로 배를 채웠다. 허기에 지쳐 잠시 잠이 들었는데 느닷없이 물세례를 받았다. 선생님이 식사 후 도시락 헹군 물을 창밖으로 무심코 버렸는데 그 물을 뒤집어쓴 것이었다.

선생님은 다음날부터 도시락을 두 개씩 싸오셨다. 난 부끄러움에 도망쳤다. 그러나 대부분 교실 문을 빠져나가기 전에 내 손목은 선생님에게 잡혔다. 그러면 노란 양은도시락 하나가 내 손에 들렸다. 나는 차츰 선생님의 도시락을 소중하게 받아드는 순한 양이 되어갔다. 선생님과 함께했던 아름다운 날들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3학년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은 내게 “결코 꺼지지 않는 푸른 등불 하나를 가슴속에 키우라”는 말씀을 남기고 멀리 경북 달성군으로 전근을 가셨다.

‘또 한 분의 어머니’라 부르는 김남숙 은사님을 다시 찾은 것은 1989년 무렵이었다. 선생님을 다시 찾은 4월25일을 나름의 스승의 날로 삼아 매년 찾아뵙거나 그럴 형편이 못 되면 전화로 안부를 드리고 있다.

누군가 내게 지난날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아픈 것 하나 꼽으라면 도시락을 들겠다. 그것은 배고픔과 외로움과 고통이었다. 또 누군가 내게 지난날에서 간직하고 싶은 가장 소중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역시 도시락을 들겠다. 그것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사랑이요, 희망이었다.

이병석 < 국회 부의장 lbs@assembly.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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