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구 기자 ] 하나 둘 통폐합돼 사라지던 대학 ‘안전 학과’가 다시 뜬다. 세월호 참사가 환기시킨 안전전문가 육성의 국가적 필요성 때문이다. 재난전문가 육성에 손을 놨다는 지적을 받은 중앙정부도 내년 공채부터 ‘방재안전직렬’ 공무원을 본격 선발키로 했다.
세월호 참사 한 달째인 16일 대학들과 안전행정부 등에 따르면 안전·방재·소방 등 관련 학과들이 주목받고 있다. 정부가 관련 수요를 파악해 직접 채용할 예정이어서 재난·안전전문가를 길러내는 안전공학과의 인기도 높아질 전망이다.
안전행정부는 2012년 기술직군에 방재안전직렬을 신설하는 내용의 ‘공무원임용령’ 개정 계획을 발표했다. 작년엔 공무원임용시험령 개정작업까지 완료해 필요성을 인정했으나 실제 채용은 전무했다.
하지만 내년 공채엔 방재안전직렬이 포함될 방침이다. 조성주 안행부 인력기획과장은 “국가안전처 신설에 따라 각 부처 수요를 파악해 내년 공채엔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학에 안전공학과가 첫 선을 보인 것은 1980년대다.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늘어난 산업재해와 안전사고에 대처하기 위해 설립됐다. 1984년 충북대와 서울과학기술대 등에 ‘산업안전공학과’란 명칭으로 처음 학과가 개설됐다. 산업 현장 등에서 대형 안전사고가 자주 일어나면서 한때 학과 수가 20개가 넘었다.
그러나 이후 정부가 경기 회복을 명목으로 규제 완화를 밀어붙이면서 기업의 안전 담당 부서는 크게 축소됐다. 이에 따라 관련 전공자의 진로가 줄어든 데다 대학의 학과 구조조정까지 맞물려 현재 안전공학과가 개설된 대학은 서울에선 서울과기대가 유일하다.
지역의 한 대학 안전공학과 교수는 “기존에 있던 안전공학과들이 수요가 줄어들면서 학과 통폐합을 통해 산업공학과 같은 인접 분야로 흡수됐다” 며 “현재 4년제대 가운데 안전공학과가 있는 곳은 경인지역을 통틀어 국·공립대인 서울과기대와 인천대 정도”라고 말했다.
전국적으로도 대학의 안전 관련 학과가 개설된 대학은 방재·소방분야 학과까지 합쳐 37곳에 그쳤다. 모집인원은 2113명으로 전체 4년제대 입학정원(34만6862명)의 0.6%에 불과했다.
이 같은 내용의 안전 관련 학과 개설현황을 조사해 발표한 이투스청솔 오종운 평가이사는 “앞으로 재난 관련 학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전문가 수요가 늘어난 만큼 대학들의 발걸음도 빨라질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 중앙정부의 공채 선발 방침과 함께 지자체들이 앞장서 방재안전직렬을 뽑아 취업문이 확대된다. 올해 대전과 충남이 최초로 방재안전직렬 공무원(9급)을 2명과 3명씩 선발한다. 경쟁률은 각각 17.5대 1과 8.67대 1로 관심이 높다.
기업들도 대학에 안전교육 강화를 요구했다. 최근 발표된 ‘산업계 관점 대학평가’에서 정유석유화학 분야 기업들은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안전 관련 교과목 내용 구성이 미비하다” 며 “현장 요구와 대학 교육과정의 격차 해소를 위해선 공정안전 교육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김민 동국대 경주캠퍼스 안전공학과 학과장은 “기업들이 안전 분야를 강화화고, 방재안전직렬 공무원 선발 역시 기존 시험과목 외에 안전 관련 과목(재난·안전관리론)이 포함돼 안전공학과 출신에게 메리트가 있다” 며 “학생들이 ‘산업·건설안전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커리큘럼을 짜놓았다. 손쉽게 관련 분야에 진출할 수 있어 입시 경쟁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소방방재청 신설 이후 대학들이 소방·방재 분야 학과에 포커스를 맞춘 만큼 안전전문가 육성을 위한 확실한 정책적 배려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김찬오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방재안전직렬을 만들어 놓고도 채용이 안 되니 대학에 안전 관련 학과가 발붙이기 힘든 것” 이라며 “재난관리 전문인력 부족이 이번 참사의 한 원인이 된 만큼 안전공학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뿐 아니라 이 분야 산업을 특성화해 키우는 노력이 뒷받침해야 대학도 안심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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