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익 기자 ]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사진)은 ‘괴짜’다. 2012 런던 올림픽을 홍보하겠다며 와이어에 몸을 매달고 버둥거리는 모습은 영국 네티즌들에게 패러디 소재로 애용됐다. 지난해 상하이에선 호텔 30층 옥외에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그러나 그가 한낱 웃기는 정치인은 아니다. 그는 안전 문제로 폐지됐지만 런던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 온 시티 투어 버스를 부활시켰고, 칼을 이용한 범죄 1만건을 단속하는 성과를 올렸다. 사람들이 거대 담론에 매몰된 정당 정치인보다 시민 친화형 정치인에게 환호한다는 것을 존슨 시장은 행동으로 보여준다.
사회학자이자 정치이론가인 벤자민 R 바버(미국 럿거스대 명예교수)가 쓴 《뜨는 도시 지는 국가》는 ‘시장(市長)이 세계를 통치한다면(If Mayors Ruled the World)’이라는 원제가 잘 시사하듯이 국민국가보다 도시와 시장이 세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거대 담론과 이론에 능해야 하며 정당의 일원이어야 하지만 시장은 실용주의자며 문제 해결자라고 정의한다.
1997년 교토 기후협약엔 180여개국 정상들이 모여 전 지구적 기후변화에 대비하기로 했지만 미국 중국 인도 등 주요 국가가 협약에 빠지면서 빛이 바랬다. 반면 기후변화 세계시장회의에서 발의된 멕시코시티 협약에는 207개 도시가 참여해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설명한다.
도시의 정치는 국가의 이념과 다르다. 조약보다는 교통, 원칙보다 도로의 파인 곳을, 전쟁보다는 쓰레기 처리에 신경을 쓴다. 시민들이 맞닥뜨린 문제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도시의 정치다. 도시의 정치는 지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가령 서울과 전주의 시정(市政)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통, 환경, 주거 등과 관련해서는 베이징과 도쿄의 사례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도시의 국제 교류가 세계 문제 해결에 한 가지 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개별 도시 간 교류를 넘어 ‘전 지구적 도시의회’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어떤 강제 수단 없이 설득과 합의에 기대고 자발적 행위를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국가가 경쟁관계가 되면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도시 의회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도시의 장점을 강조하면서 국가의 기능을 낮게 보는 주장엔 반론이 가능하다. 어쨌든 도시는 국가에 소속돼 있고, 세계 문제는커녕 내부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도시, 무능한 시장도 수두룩하다. 서울의 무상급식 논쟁은 서울 시민의 삶보다 정치 논쟁으로 변질돼 서울을 비롯한 한국 사회의 논란거리가 됐다. 거대 정당 소속이 아니라면 선거에서 당선되기 힘든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런 약점을 감안하더라도 시장은 시민의 삶을 책임지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목소리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 내달 4일 전국 동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자와 유권자 모두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주제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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