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국보 1호 숭례문이 화재로 유실되는 비통한 사건이 있었다. 임진왜란을 비롯하여 여러 전쟁 통에도 특별한 사고 없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숭례문이었기에 한 사람의 어처구니 없는 방화로 유실되어 더욱 그 충격이 컸다. 1396년 축조된 숭례문은 서울도성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서울에서 현존하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었으며 고려시대의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우리의 대표적인 문화재였다. 그러한 역사적 가치 등을 인정받아 국보 1호에 오른 건물이었다. 우리는 이처럼 높은 가치를 갖고 있는 숭례문을 누구나 쉽게 쳐다보며 누릴 수 있었다. 그것은 숭례문이 남대문로 대로변에 있었기에 시민 모두 그 위용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무 제약 없이 누구나 쉽게 해당 재화나 서비스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성격의 재화를 공공재라 한다.
비경합성·비배제성 재화
많은 사람들이 공공재라고 하면 정부에서 생산한 물건 등을 이르는 말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공공재는 단순히 정부나 공공단체가 공급하는 물건들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급 주체와 상관없이 단지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소비하는지 여부에 따라 구분한다. 따라서 공공재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비용을 부담한 사람 이외에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 가능한 재화나 서비스를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도로, 치안, 가로등, 공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공공재를 이렇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이유는 공공재는 경합성과 배제성이 없는 재화이기 때문이다. 이를 흔히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이라 부른다. 먼저 비경합성이란 공동소비가 가능한 것으로, 한 사람이 소비를 늘리거나 줄여도 다른 사람의 소비 가능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다. 한 사람이 해외에서 이민을 오거나 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국방서비스의 소비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도로등대전파 등의 재화와 서비스가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 비경합성은 다른 사람이 추가로 소비를 늘리는 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비배제성이란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소비로부터 배제시킬 수 없는 특성이다. 사적재는 대가를 지불한 사람에게만 재화와 서비스가 공급되지만, 국방 서비스와 같은 공공재의 경우 세금을 내지 않은 사람, 불법체류자 등을 선별하여 이들에게 제공되는 국방서비스를 배제시킬 수 없다(비배제성). 이것은 도로등대전파 등의 재화와 서비스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과소공급으로 인한 ‘시장 실패’
비배제성으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소비가 가능하다면 사람들은 아무도 재화와 서비스의 소비에 대해 값을 치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무임승차문제(free-rider problem)라고 한다. 국방서비스를 기업이 공급한다면 아무도 대가를 지불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은 수익을 창출할 수 없다. 이런 사실을 기업이 알고 있다면 어떤 기업도 시장에서 국방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방서비스는 반드시 필요한 재화이므로 공급되어야 한다. 비배제성의 특성으로 인해 공공재는 시장에서 과소공급 또는 공급이 전혀 되지 않는 시장실패가 나타난다.
공공재를 흔히 정부에서 생산한 재화로 오해하게 된 원인도 여기에 있다. 많은 공공재가 무임승차 문제로 인해 해당 사회에서 필요한 수준만큼 공급되지 못하는 시장실패에 놓이기 때문에 정부가 이를 직접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공공재는 정부가 생산하는 재화라 오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부에서 공급하는 재화 중에 공공재가 아닌 것이 많다. 정부가 생산, 공급하는 수돗물, 가스, 의료 서비스 같은 것들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경우에는 내가 소비한 만큼 다른 사람이 소비할 수 있는 양이 적어지는 재화이기 때문이다.
앞서 서두에서 언급한 숭례문을 비롯한 한국의 많은 문화재는 공공재적 성격을 갖고 있다. 물론 박물관 등에서 전시하는 것들은 입장료를 지불한 사람만 열람이 가능하기 때문에 배제성을 갖고 있지만, 사찰이라든가 탑 내지 성곽 등의 문화재는 누구든 편하게 해당 문화재의 가치를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해당 문화재를 더 많이 관람한다고 해서 다른 누군가가 이러한 혜택을 덜 누리게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재 원형 되살리는 기술 연구
그렇다면 이러한 문화재는 누가 관리하는가? 정답은 정부다. 누군가 굳이 해당 문화재가 유실되지 않게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가 이를 관리해주면 그로 인한 혜택을 다른 사람들도 얻을 수 있는 상황이기에 문화재 또한 정부의 책임하에 관리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화재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다름 아닌 문화재수리기술자다.
문화재수리기술자는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문화재의 수리에 대한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특히 문화재수리기술자는 실질적인 문화재수리 업무를 담당하는 문화재수리기능자의 작업을 관리 감독한다. 구체적으로는 궁궐, 사찰 등의 파손된 부분을 복원하거나 훼손된 문화재의 원형을 되살리기 위해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고 이와 관련된 기술을 연구하는 일을 한다. 또한 정기적으로 문화재의 보존 상태를 점검하고 이를 바탕으로 효과적으로 문화재를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한다. 세부 업무 내용에 따라 보수기술자, 단청기술사, 실측설계기술자, 조경기술자, 보존과학기술자, 식물보호기술자 등으로 구분된다.
현재 국내에는 2000명에 가까운 문화재수리기술 자격증 보유자가 있으며, 문화재수리기능자까지 합할 경우 9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 문화재수리기술자와 기능자는 문화재수리업에 등록된 400여개의 업체에 취업하여 문화재 수리 관련 전문분야에서 활동하게 된다. 특히 국가지정문화재 수는 야외에 노출된 건조물문화재가 6752건에 이르고, 그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으며 문화재청 등에서 이들 문화재 보수를 위해 투여하는 예산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문화재수리기술자의 수요를 안정적으로 늘리는 요인이라 할 것이다. 연간 급여는 평균 5000만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현재는 실측 설계 기술자 응시생에게만 건축사 자격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외에는 별도의 응시자격 제한이 없다.하지만 2015년 이후에는 지금까지의 이론 위주 시험에서 벗어나 실기와 현장 실무 경험을 중시하는 형태로 바뀔 예정이며, 지원자의 자격 요건을 강화한다고 한다. 문화재 수리 업무에 10년 이상 종사한 공무원에게 자격증 시험의 일부 과목을 면제해주는 제도는 특혜라는 지적에 따라 폐지한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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