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업가정신인가] 공장설립 간소화 약속, 20년째 말잔치로 끝나

입력 2014-05-25 21:05   수정 2014-05-26 03:47

<3부> 기업 족쇄부터 풀어라

실행 더딘 한국

정부 바뀔때 마다 '단골 메뉴' 내놨지만 최근 규제 더 늘어나
인허가 받는데 100일 넘어^공장설립 최소 6개월



중소기업 K사는 작년 11월 경기 여주시에 새 공장을 짓는 계획을 추진했다. 왕복 4차선 도로에 인접한 8000㎡가량의 부지도 물색해뒀다.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던 공장 설립계획은 한 달도 안돼 ‘올 스톱’됐다. 작년 12월23일 국토교통부가 ‘개발행위허가 운영지침’을 개정하면서다. 이 지침은 전국의 계획관리지역에 공장을 신축하려면 부지면적에 따라 △5000㎡ 미만은 폭 4m △5000~3만㎡는 폭 6m △3만㎡ 이상은 폭 8m의 진입로를 해당 기업이 의무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전까지는 없던 규제다. 이에 따라 K사는 공장을 짓기 위해선 4차선 도로에서 신축 부지까지 이어지는 1㎞의 진입로를 폭 6m 이상으로 새로 만들어야 한다. 진입로 확장에 필요한 토지 매입가격은 ㎡당 100만원. K사 대표는 “현재 3m인 진입로 폭을 두 배로 늘려야 하는데, 공장부지 매입비보다 진입로용 토지 매입비가 10배나 더 든다”며 “사실상 공장을 짓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K사는 올해 초 공장 신축계획을 접었다.

‘기업환경개선’은 매번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내놓는 ‘단골 메뉴’다. 기업 기(氣)살리기, 전봇대 뽑기, 손톱 밑 가시 등 명칭만 다를 뿐 정부마다 늘 같은 약속을 내놨다. 정부의 기업환경개선 약속은 제대로 되고 있을까. 산업현장에선 “구호만 요란할 뿐 시간이 지나면 도로아미타불”이란 지적이 많다.

20년째 안 지켜지는 약속

역대 정부가 내놓은 대표적 기업환경개선 약속은 ‘공장설립 절차 간소화’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3년 4월, 김영삼 정부는 취임 초 ‘행정규제 완화 대책’을 내놨다. ‘기존에 2~3년이 소요되는 공장 설립 허가 기간을 45일 이내에 완료하도록 명문화하겠다’는 게 이 대책의 골자였다. 4년 뒤인 1997년 12월에도 정부는 비슷한 대책을 내놨다. 당시 통상산업부는 공장 설립에 관한 입지규제를 대폭 완화해주고 관련 절차를 간소화한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김대중 정부도 ‘공장 설립절차 간소화’를 약속했다. 2001년 11월 산업자원부는 경제규제 개혁 조치에서 “복잡한 행정 인허가 절차를 줄여 개별기업의 공장 설립 준비 및 행정처리 기간을 40일 이상 단축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 때도 마찬가지. 2008년 4월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는 환경영향평가 제도 개선 등을 통해 공장 설립 기간을 종전 150일에서 45일로 줄이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현 정부도 작년 7월10일 기업의 공장 신·증설을 어렵게 하는 입지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처럼 지난 20여년간 정부는 공장 설립 절차를 간소화해주겠다는 대책을 수없이 내놨다. 그렇다면 현재 공장 설립 기간은 획기적으로 줄었을까. 본지가 공장 설립 컨설팅업체에 의뢰한 결과 공장 설립 기간은 단축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더 어려워진 공장 설립 절차

공장 설립을 위해서는 입지·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15단계를 거쳐야 한다. 크게 보자면 △공장입지 선정 △공장 설립 신청 및 인허가 △건축 및 설립신고 등이다. 최근 3년간 새로운 단계가 추가된 건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주요 단계별로 세부 절차가 더 복잡해졌다. 먼저 공장입지 선정 과정에서 ‘개발행위허가 운영지침’이 까다롭게 바뀌었다. 이 지침 탓에 K사처럼 공장을 지으려는 기업은 인근 포장도로에서 신축 공장까지의 진입로를 일정 폭 이상 새로 깔아야 한다. S측량사무소 관계자는 “규모가 큰 산업단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공장을 지을 만한 개별부지 진입로는 폭이 2~3m에 불과하다”며 “정부나 지자체가 도로를 깔아주지는 못할망정, 기업이 비용을 부담해 진입로까지 만들라는 지침 탓에 공장 설립을 포기하는 중소기업이 속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허가 절차도 마찬가지다. 공장을 지을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환경영향평가’도 복잡해졌다. 2012년까지는 개발면적이 1만~10만㎡인 경우 ‘사전환경성 검토’라는 간소화 절차를 거치면 됐는데, 정부는 이를 2012년 7월부터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로 변경했다. 개별 기업이 낼 수 있던 환경영향평가 관련 서류를 무조건 컨설팅업체를 통해 내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서류 준비 기간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올해 3월에는 ‘사전재해영향성 검토’ 절차가 강화됐다. 이 절차는 공장이 홍수, 산사태 등 자연재해에 취약한지를 평가하는 단계다. 당초 사전재해영향성 검토 대상은 공장 개발면적이 1만㎡ 이상인 때에만 해당되는데, 정부는 이를 산지의 경우 5000㎡ 이상으로 확대했다.

인허가의 마지막 단계인 도시계획심의도 평균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하는 일이 허다하다. S측량사무소 관계자는 “역대 정부가 공장 설립을 최소 45일 이내에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인허가를 받는 데만 여전히 최소 100일가량 걸린다”고 지적했다.

공무원들의 ‘규제 집착증’ 버려야

기업들은 정부가 규제완화, 기업환경 개선을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또 다른 규제를 만들어내는 이율배반적인 행태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한쪽에선 규제개혁을 얘기하고, 다른 쪽에선 규제의 고삐를 죄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설명이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싱가포르 공무원들은 스스로를 ‘국민, 기업을 위한 서비스맨’으로 생각해 명함에 자신의 얼굴 사진을 새겨넣고 다닌다”며 “이런 마인드 없이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개혁도 2~3년 뒤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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