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高·경상흑자의 '공존'…장기 저성장 신호일 수도
[ 김유미 기자 ] 환율 하락(원화 강세)에도 경상수지가 예상을 뛰어넘는 흑자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선진국 경기회복에 힘입어 지난달 수출이 역대 최고치를 찍으면서다. 세월호 충격에 휩싸인 내수와는 ‘극과 극’이다. 원·달러 환율이 5년9개월 만에 저점을 다시 썼지만 외환당국의 운신 폭은 더 좁아졌다.
○예상외의 수출 호조
한국은행은 4월 경상수지(잠정치)가 71억2000만달러 흑자를 나타냈다고 29일 밝혔다. 전년 동월보다 25억7000만달러(56.5%) 급증하면서 4월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2012년 3월 이후 26개월째 흑자행진이다.
수출입에 따른 상품수지 흑자는 106억5000만달러로 사상 처음 100억달러를 넘었다. 수출이 전년 동월보다 10.0% 늘어나 567억2000만달러에 달했다. 역시 월별 통계로는 최대다. 수입이 460억7000만달러로 0.9% 감소하며 흑자폭을 더 키웠다.
노충식 한은 국제수지팀장은 “미국과 유럽 경기회복에 힘입어 승용차와 철강제품 등의 수출이 늘었다”며 “이달에도 일평균 수출이 상당히 좋아 흑자기조가 견조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은이 예상한 올해 경상흑자는 680억달러. 1~4월 누적 경상흑자(294억4000만달러)만으로도 43.2%를 달성했다.
○일본식 저성장 오나
올초만 해도 수출 전망이 좋지만은 않았다. 급격한 엔저와 원화 강세 탓에 수출업체의 가격경쟁력이 훼손될 것이란 우려였다. 그동안 수출 호조로 달러화가 쌓이면서 환율 하락 속도는 더 빨라졌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나흘 연속 내리며 전일보다 80전 하락한 달러당 1020원60전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2008년 8월7일(1016원50전) 이후 최저치를 다시 쓴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내수가 위축된 상황에서 수출 호조는 그나마 긍정적이다. 하지만 경상수지 ‘내용’을 보면 안심하기 이르다. 환율이 내려 내국인의 구매력이 높아졌는데도 수입은 석 달째 감소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소비·투자가 부진한데다 원자재값은 안정돼 수입이 늘기 어렵다”며 “자칫 원고(高)와 경상흑자가 공존하는 일본형 불황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환율이 하락하면 수입이 늘고 수출은 줄어들면서 환율이 다시 오르게 된다. 이 같은 조절 흐름이 깨진 사례가 1980년대 후반 일본이다. 엔화 가치가 급등했지만 국제유가는 안정돼 경상흑자가 계속됐다. 엔고가 계속되자 일본 기업들은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겼고, 고용이 늘지 않는 장기 저성장을 겪었다.
○1020원 붕괴 용인하나
오랜 지지선이던 달러당 1050원대가 지난달 초 깨진 뒤 외환당국은 환율 방어에 신경쓰고 있다. 원화 강세가 빨라져 원·엔 환율이 100엔당 900원대까지 주저앉으면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
하지만 간신히 지켜온 1020원대도 곧 무너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원화 가치를 의도적으로 내려 경상수지 흑자를 이끌고 있다며 감시의 눈을 뜨고 있다.
수급 상황도 원화 강세에 무게가 실린다. 수출 기업마다 막대한 달러를 안고 있어 이들 물량이 시장에 풀릴 때마다 환율은 하락 압박을 받고 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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