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대학총장 인터뷰④] 천장호 광운대 총장 "서울대생 이길 수 있는 '제2의 신종균' 키운다"

입력 2014-06-09 11:39   수정 2014-06-09 15:45

'ICT 특성화 강소대학' 비전… 수석 입학·졸업한 광운대맨
정직 서약, 5분 전 강의, 100% 영어 판서 '30년 지킨 원칙'



<대담 최인한 한경닷컴 뉴스국장>

“광운대는 서울대를 이길 수 없어도 광운대 학생은 서울대 학생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올 1월 취임한 천장호 광운대 총장(66·사진)이 교수생활에서 내세운 인생 목표다. 천 총장은 학생을 가르치면서 정직 서약, 5분 전 강의 시작, 100% 영어 판서 등을 지켜왔다.

천 총장은 광운대 수석입학, 수석졸업 타이틀과 함께 1979년부터 모교 강단에서 후배들을 가르친 ‘광운대맨’.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지만 처음엔 상처에 가까웠다. 서울고 출신인 천 총장은 전·후기로 선발하던 당시 서울대에 떨어지고 광운전자공과대학(현 광운대) 입학을 택했다. 서울고가 한 반 학생 60명 중 40명 가까이 서울대에 보내던 시절이었다.

“이젠 축복으로 믿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입을 뗀 그는 “전자공학으로 출발한 광운대를 확실한 ICT(정보통신기술) 특성화 강소(强小)대학으로 발전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광운대 동문으로 샐러리맨 신화를 쓴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 같은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것이다.

그는 모교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올 초 총장 취임과 함께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선언했다. 휴대폰과 자동차도 없어 이른바 ‘3무(無) 총장’으로 불린다. 보기 드문 검소함으로 화제가 됐지만 천 총장은 “스토리는 되지만 자랑거리는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보다는 세계적 학술상 수상자로 알려지고 싶다는 게 천 총장의 소망. 그는 2011~2012년 2년 연속 ‘에너지 분야의 노벨상’으로 통하는 에니상 최종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천 총장은 “총장 임기 동안 노벨상이나 에니상 같은 세계적 학술상을 받는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개인적 영광일 뿐 아니라 광운대 위상이 올라가고 학교 발전기금도 늘어나지 않겠느냐”며 활짝 웃었다.

- 총장에 취임하니 어떻습니까. 보직교수 때와 다를 텐데요.

“평교수일 땐 어떻게 보면 단순했죠. 내 연구 잘 하고 학생들 열심히 가르치는 것으로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솔직히 평교수들은 학교정책이나 방향에 대해 그리 큰 관심이 없어요. 총장의 입장이 되니 다르더군요. 일해 보니까 그래선 안 되겠구나 싶어요. 교수들도 보직을 많이 맡아봐야 학교 운영의 고충을 알고 학교 정책도 이해할 것이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 대학의 생존 경쟁이 치열한 때 총장을 맡았습니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로 나라가 흔들렸어도 대학은 무풍지대였습니다. 교수 충원이 모자라 구조조정은 생각도 못했어요. 그런데 이젠 교육 당국이 대학구조조정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학사회가 겪는 IMF 사태인 셈입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KAIST(한국과학기술원) 포스텍(포항공대) 정도를 제외하면 예외가 없는 생존 차원의 문제예요.”

- 살아남기 위한 광운대만의 경쟁력은 뭡니까.

“대학이 살아남으려면 경쟁력이 있어야 하고, 경쟁력은 특성화에서 나옵니다. 반값 등록금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학생들에게 ‘광운대가 서울대 정도의 위상이라면 등록금 2배를 낼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답하더군요. 초일류 제품, 세계적 명품엔 불황이 없다고들 하잖아요. 결국 보다 높은 양질의 교육과 연구로 학교의 위상을 높이는 게 경쟁력입니다. 교수는 독창적 연구로, 학생은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의 질이 중요하죠.”

- 1970~1980년대에 광운대는 공대로 유명했습니다. ICT 특성화가 돼 있을 텐데요.

“광운대는 전자공학 중심으로 출발해 이미 특성화는 돼 있습니다. 어떻게 경쟁력을 갖추느냐가 관건이죠. 핵심은 국내 1등이 아닌 ‘국내 유일’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컨대 서울대 정년보장(테뉴어) 교수의 상당수가 1년에 논문 한 편도 안 쓴다고 하거든요. 반면 광운대는 정년보장 교수들이 모두 논문을 쓴다면 차별화가 될 수 있겠죠.”

- 차별화가 중요하다는 얘기군요.

“똑같은 방식으로 경쟁해선 광운대 학생들이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나 KAIST, 포스텍 학생을 따라가기 어려워요. 하지만 그 학생들이 갖고 있지 못하는 것을 가르치면 우리만의 경쟁력이 되죠. 무감독시험, ‘학점세탁제도’ 폐지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겁니다. 명품도 스토리가 있어야 하고 각자의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 올해로 학교 설립 80주년을 맞았습니다. ‘제2의 도약’ 비전이 있다면.

“다른 대학에 비해 빨리 특성화 된 데 비해선 다소 침체기를 겪었던 게 사실이에요. 학교 법인이 관선화 되기도 했고, 종합대가 되면서 특성화와 조금 거리가 멀어지기도 했습니다. 고유한 경쟁력을 갖춘 공대 쪽이 오히려 약해진 감이 없지 않죠. 교육부에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어요. 경쟁력이 떨어지는 학과와 단과대학은 통폐합하면서 재정비 할 계획입니다.”

- 전자공학을 비롯한 ICT를 강화하는 방향이겠죠.

“그렇습니다. 광운대는 공대가 경쟁력이 있어요. 인문사회 분야는 상대적으로 축소·조정되겠죠. 가능한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충분히 소통하면서 통폐합 작업을 추진해 나갈 생각입니다. 대학평가나 산학협력 등 사회적 분위기도 이공계가 그 대학의 전체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는 추세예요. 시간은 다소 걸리겠지만 ICT 강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역사가 깊고 특성화 분야가 뚜렷해 훌륭한 동문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 같은 성공한 동문들이 많이 있어요. 전자공학을 중심으로 한 ICT 특성화라는 배경이 있죠. 광운대 졸업생에 대한 기업체 평가는 ‘성실하고 믿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장점을 충분히 살려 비(非)ICT 학과의 경우 ICT 분야와 융합할 수 있게끔 학생 취업과 맞춤형 교육에 포커스를 맞춰 커리큘럼을 개선하고 있어요.”

- 화제를 바꾸겠습니다. 광운대 수석입학, 수석졸업의 주인공입니다.

“서울대 낙방으로 얻은 상흔이자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희 때는 전기와 후기로 나눠 대입을 치렀어요. 저는 서울고를 나왔는데, 그때만 해도 한 반 60명에 40명 정도는 서울대 가고 연고대 가게 되면 고개를 못들던 시절이었습니다. (웃음) 그랬으니 저도 당시엔 상처가 컸죠. 입학 후 곧바로 군입대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젠 하나님의 축복으로 믿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 총장님만의 독특한 교육철학이 있다고 하던데요.

“교수로 학생들 가르칠 때 ‘정직 서약’부터 하게 했어요. 당시 우리 사회가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인식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총체적으로 보면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그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설령 우리 학생들이 일류대 학생에 비해 지식은 좀 떨어지더라도 정직하게 신뢰받으며 일하면 얼마든지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세월호 사고도 기본적으로 정직하지 못해 생긴 참사 아닙니까.

저는 30년 넘게 100% 영어 판서로 수업을 했어요. 영어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5분 전 강의 시작도 제 원칙이었죠. 직장에서도 5분 빨리 시작하면 상사가 알게 마련이에요. 그 성실함으로 학벌 좋은 일류대 출신과 경쟁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정직 서약, 100% 영어 판서, 5분 전 강의 시작 이 3가지는 항상 실천했습니다.”

- 그렇게 가르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사실 광운대가 ICT 특성화는 돼 있지만 대학서열 상으로는 일류는 아니니까요. 이걸 극복하려면 부지런하고 정직해야 하고 영어 실력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운대가 제 모교니까 가능했죠. 다른 대학에서 강의했다면 이렇게까지는 안 했을 거예요. (웃음)”

- 일류는 아니라고 하지만, 신종균 사장 같은 경우는 대단한 케이스입니다.

“광운대 출신으로 일류대 졸업생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노력하고 덜 자면서 일했을 겁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말이 ‘광운대는 서울대를 이길 수 없지만 광운대 학생은 서울대 학생을 이길 수 있다’는 거에요. 그 말에 용기를 얻었다는 졸업생들이 많아요. 각자의 브랜드는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 ‘3무 총장’이란 별칭은 어떻게 나온 겁니까.

“제 소유의 휴대폰과 자동차가 없고 무보수 총장 선언을 해 그렇게 이름이 붙었죠. (웃음) 별로 불편하지는 않아요. 저는 연구하고 실험할 땐 늘 전화 안 받았습니다. 자동차 없이 안양에 살아서 학교 오려면 늘 새벽 5시 좀 넘어 지하철 첫 차를 타곤 했어요. 저는 궁핍하거나 불편해도 참으면서 산 세대예요. 총장 월급을 안 받는 건 모교와 국가에 대한 감사와 봉사 차원입니다. 수석입학, 수석졸업, 정수장학생, 국비유학생 등으로 평생 혜택을 받았으니까요.”

- 그래도 업무상 소통할 일도 많을 텐데 휴대폰이 없으면 곤란하지 않나요.

“사실 보직교수 때 학교 명의로 휴대폰도 받았고, 총장 되고나선 학교 관용차도 제공받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얘기해요. 앞으로 이런 ‘광운 스토리’로 학교를 알리고 세일즈도 해야 하는데, 제 한 몸 편하자고 휴대폰, 자동차 사면 ‘3무 총장’이란 말부터 거짓말이 되지 않느냐. (웃음) 똑똑한 학생들 뽑아 좋은 시설에서 가르쳐 키워내는 건 스토리가 아니에요. 조금 모자라도 최고의 학생을 길러내는 게 스토리가 되죠. 그런 스토리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한결 같으시군요. (웃음)

“그게 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졸업생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학교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비결 중 하나가 이른바 광운 스토리죠. 광운대에 발전기금을 낼 사람은 동문이나 학부모가 대부분이거든요. 냉정하게 생각하면 동문이라 해도 모교가 자랑스러워야 기부를 하지 않을까요. 광운대가 ICT 특성화 대학이라고 하지만 사실 서열로 따지면 일류는 아니니까요.

광운 스토리를 개발해 널리 알려 감동 받고, 마음의 문이 열리는 계기를 만들 겁니다. 실제로 다른 대학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광운대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한 학생이 있는데, 불행히도 회사생활 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어요. 그런데 학부모가 광운대에 사망 보상금 1억 원을 기부했습니다. 그 학생이 광운대에서 생활하며 매사에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하면서요.”

- 연구자로서도 수상 가능성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2011~2012년 에니상 최종 후보에 올랐습니다. 에너지 분야의 노벨상이라고 부릅니다. 과학자들 사이에선 ‘과학적 행운(scientific serendipity)’이란 용어를 쓰는데, 개인적 꿈은 노벨상이나 에니상 같은 세계적 학술상 수상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만의 영광이 아니라 제 연구는 100% 광운대산(産)이니까 학교 위상도 올라가고 기부금도 많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 지하철 성북역이 광운대역으로 바뀌면서 홍보 효과가 상당할 듯합니다.

“역명 변경에 따른 입학 경쟁률이나 점수대 상승 여부를 따로 분석하지는 않았지만, 광운대역은 수많은 통과역이 아니라 종착역 중 하나라 홍보 효과가 더 큽니다. 수원, 천안 등에서 오는 1호선 열차 종착역이 광운대역이거든요. 제가 항상 지하철을 타고 다니기 때문에 알죠.”

- 갈수록 대학 운영에 자본력이 중요해집니다. 재원 확충 방안은 뭡니까.

“법인도 수익사업 확대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사립대가 그렇듯 장밋빛 미래만 있는 건 아니에요. 다만 교수들의 연구를 기술사업화 하거나 벤처창업 등을 통해 학교 재정을 튼튼히 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광운대 출신이 모태인 ‘아이센스’란 벤처기업이 있는데 상장까지 할 만큼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학교에도 수억 원을 발전기금으로 냈어요. ICT 특성화 대학이니 가능한 모델이죠. 이런 사례가 좀 더 많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 총장님을 비롯해 최근 이공계 출신 총장이 강세인 이유는 뭘까요.

“전공 학문의 속성상 관찰과 평가, 분석이 구체적이고 정확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요즘 화두인 창업 창조경제 산학협력 원천기술 등의 관점에서 이공계 총장이 본능적으로 앞서는 부분이 있다고 할까요. 물론 이공계 총장이 장점만 있는 건 아니죠. 상대적으로 사교성이 떨어지고 소통 능력이 부족한 점도 있다고 봅니다. 저도 그런 부분에 대해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 어떻게 학교 운영을 할 계획인지요.

“4~5개월 총장을 하면서 가장 잘한 게 월급을 안 받은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시기인데 저부터 그런 자세로 임해야죠. 저는 총장 취임식이나 교수 수련회도 열지 않았습니다. 그것만 해도 비용 1억 원 가까이를 절감한 효과를 봤어요. 이 같은 노력이 담긴 광운 스토리를 잘 알려 호응을 얻어 동문들에게 자랑스러운 학교로 각인되도록 힘쓰겠습니다.”

◆ 천장호 총장은…

1948년 서울 출생, 서울고 졸업. 광운대 수석입학·수석졸업 후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스티븐스공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프린스턴대와 일본 동경대에서 방문과학자로 연구생활을 했으며 2011~2012년 2년 연속 에니상 최종후보에 오른 바 있다. 1979년부터 광운대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처장 학생처장 대학원장 부총장 총장직무대행 등의 보직을 두루 거쳤다. 올해 1월10일 광운대 총장으로 선임돼 학교를 이끌고 있다.

글=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 진연수 기자 jin9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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