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공대가 변해야 기업이 산다
(1) 기초능력 부족한 공대생
공대생 넘쳐나지만…
인구 1만명당 졸업생 13.8명…美 3.3명·英 4.4명보다 많아
기업 "쓸만한 인재 없다"
"中 공대생보다 실무 떨어져"…철강 등 핵심 제조업 구인난
[ 강현우 기자 ]
박해룡 LS산전 최고인사책임자(CHO·상무)는 최근 중국에서 진행한 글로벌 채용 면접 현장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최종 면접에 오른 10여명의 중국 대학 졸업반 학생들이 하나같이 이 회사의 최신 인버터(직류 전력을 교류로 바꾸는 장치)를 능숙하게 다뤘기 때문이다.
국내 공대 졸업생들에게선 볼 수 없었던 광경에 놀란 면접관들이 이유를 물었다. 입사 지원자들은 태연한 표정으로 “학교에서 해봤다”고 답변했다. 박 상무는 “칭화대나 하얼빈공대 등 중국 명문 공대는 실제 현장에서 쓰는 기자재 구입에 매년 수십억원을 쓴다”며 “중국 산업 경쟁력이 한국을 빠르게 따라오는 원동력을 현장형 공대 교육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대생 많아도 역량 떨어져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 196곳 가운데 4분의 3을 넘는 156개 대학이 공대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생 150만명 중 26%인 40만명이 공대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1년 조사를 보면 국내 대학에서 배출하는 공대생은 연간 6만9000여명이다. 총인구(4978만명)와 비교하면 공대 졸업생이 1만명당 13.8명에 달한다.
미국은 연간 10만1000여명의 공대 졸업생이 나오지만 인구 1만명당 비율은 3.3명으로 한국의 4분의 1 수준이다. 1만명당 공대생 수는 프랑스 5.8명, 독일 5.5명, 영국 4.4명 등으로 다른 선진국들도 한국의 3분의 1 규모다. 지표상으론 분명히 공대생이 적지 않다. 그러나 실제 산업 현장에선 쓸 만한 공대 출신 인재를 구할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최근 국내 1053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융합·실무형 공학 인재에 대한 산업계 인식 조사’에서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공학 분야 신입사원의 실무 적응 능력을 5점 만점에 평균 2.87점을 줬다. ‘매우 잘못한다(0점)~매우 잘한다(5점)’ 평가에서 54%가 보통(3점)을 줬고 ‘대체로 잘못한다(2점)’는 답변이 30%로 ‘대체로 잘한다(4점)’는 답변(16%)의 두 배에 달했다.
이 조사에서 기업들은 실무에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직접 육성한다’는 답변이 71%, ‘신입 대신 경력을 채용한다’가 26%를 차지했다.
해외에서 쓸 만한 인력 찾기도
쓸 만한 공대 출신 인재가 특히 부족하다고 호소하는 분야는 전력, 철강 등 제조업의 기반이 되는 업종이다. 산업 역사가 오래돼 최신 논문이 나오기 어렵다 보니 전공을 가르칠 교수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양질의 인재를 육성하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LS산전이 작년 말 중국, 2012년 말 미국에서 글로벌 채용을 실시한 것도 국내에서 제대로 된 인재를 충분히 찾지 못해서다. 이 회사는 300여명의 연구원 가운데 14명을 중국인으로 채우고 있다. 박 상무는 “중국 시장을 공략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국내 공대생들보다 실무 역량 등에서 나은 부분이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 분야 기업들은 인재가 부족하다 보니 신시장 개척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0년 40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가 대표적이다. 세계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독일 지멘스나 스위스 ABB가 ESS 시스템 개발에 수백 명씩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선두주자로 꼽히는 LS산전이나 효성은 ESS 전담 팀에 20여명밖에 배정하지 못하고 있다. 최영준 효성 ESS팀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경쟁하기 위해선 최소 50명 이상의 ESS 전문가가 필요하지만 국내에선 현실적으로 좋은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철강 전문인력 기근을 해소하기 위해 아예 포스텍에 정원 120명의 철강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알루미늄업체 알코아 선임연구원 출신인 프레데릭 바라 교수, 세계 최대 산업용 베어링업체인 스웨덴 SKF의 철강기술센터 임원을 겸임하고 있는 하르샤드 바데시아 교수 등 실무 경험이 풍부한 교수진이 포진해 있는 것이 이 대학원의 특징이다.
“대학 등록금 1년치 투자해야 실무 배치”
공대를 졸업한 인재가 부실하다 보니 기업들에 당장이 부담이 되는 건 재교육 비용이다. LS산전이 공대 출신 신입사원들의 재교육에만 쓴 돈은 2년간 1인당 평균 400만원이 넘었다. 생산 직군은 431만원, 연구개발(R&D) 직군은 404만원에 달했다. 직군 내 세부 직무에 따라서는 최고 685만원까지 들기도 했다.
최소 공대 한 학기, 많게는 1년 등록금을 연봉과는 별도로 교육에 투자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 교육비는 사내 전기연수원에서 진행하는 직무·기술 교육 비용만 계산한 것이다. LS산전 관계자는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일을 못해서 드는 기회비용과 근무 중 이뤄지는 현장 직무교육(OJT)과 학습동아리(COP) 등을 더하면 공대 졸업생이 제대로 한 사람 몫을 하는 시점인 입사 후 2년까지 드는 비용은 1인당 수천만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1) 기초능력 부족한 공대생
공대생 넘쳐나지만…
인구 1만명당 졸업생 13.8명…美 3.3명·英 4.4명보다 많아
기업 "쓸만한 인재 없다"
"中 공대생보다 실무 떨어져"…철강 등 핵심 제조업 구인난
[ 강현우 기자 ]
박해룡 LS산전 최고인사책임자(CHO·상무)는 최근 중국에서 진행한 글로벌 채용 면접 현장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최종 면접에 오른 10여명의 중국 대학 졸업반 학생들이 하나같이 이 회사의 최신 인버터(직류 전력을 교류로 바꾸는 장치)를 능숙하게 다뤘기 때문이다.
국내 공대 졸업생들에게선 볼 수 없었던 광경에 놀란 면접관들이 이유를 물었다. 입사 지원자들은 태연한 표정으로 “학교에서 해봤다”고 답변했다. 박 상무는 “칭화대나 하얼빈공대 등 중국 명문 공대는 실제 현장에서 쓰는 기자재 구입에 매년 수십억원을 쓴다”며 “중국 산업 경쟁력이 한국을 빠르게 따라오는 원동력을 현장형 공대 교육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대생 많아도 역량 떨어져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 196곳 가운데 4분의 3을 넘는 156개 대학이 공대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생 150만명 중 26%인 40만명이 공대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1년 조사를 보면 국내 대학에서 배출하는 공대생은 연간 6만9000여명이다. 총인구(4978만명)와 비교하면 공대 졸업생이 1만명당 13.8명에 달한다.
미국은 연간 10만1000여명의 공대 졸업생이 나오지만 인구 1만명당 비율은 3.3명으로 한국의 4분의 1 수준이다. 1만명당 공대생 수는 프랑스 5.8명, 독일 5.5명, 영국 4.4명 등으로 다른 선진국들도 한국의 3분의 1 규모다. 지표상으론 분명히 공대생이 적지 않다. 그러나 실제 산업 현장에선 쓸 만한 공대 출신 인재를 구할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최근 국내 1053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융합·실무형 공학 인재에 대한 산업계 인식 조사’에서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공학 분야 신입사원의 실무 적응 능력을 5점 만점에 평균 2.87점을 줬다. ‘매우 잘못한다(0점)~매우 잘한다(5점)’ 평가에서 54%가 보통(3점)을 줬고 ‘대체로 잘못한다(2점)’는 답변이 30%로 ‘대체로 잘한다(4점)’는 답변(16%)의 두 배에 달했다.
이 조사에서 기업들은 실무에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직접 육성한다’는 답변이 71%, ‘신입 대신 경력을 채용한다’가 26%를 차지했다.
해외에서 쓸 만한 인력 찾기도
쓸 만한 공대 출신 인재가 특히 부족하다고 호소하는 분야는 전력, 철강 등 제조업의 기반이 되는 업종이다. 산업 역사가 오래돼 최신 논문이 나오기 어렵다 보니 전공을 가르칠 교수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양질의 인재를 육성하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LS산전이 작년 말 중국, 2012년 말 미국에서 글로벌 채용을 실시한 것도 국내에서 제대로 된 인재를 충분히 찾지 못해서다. 이 회사는 300여명의 연구원 가운데 14명을 중국인으로 채우고 있다. 박 상무는 “중국 시장을 공략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국내 공대생들보다 실무 역량 등에서 나은 부분이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 분야 기업들은 인재가 부족하다 보니 신시장 개척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0년 40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가 대표적이다. 세계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독일 지멘스나 스위스 ABB가 ESS 시스템 개발에 수백 명씩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선두주자로 꼽히는 LS산전이나 효성은 ESS 전담 팀에 20여명밖에 배정하지 못하고 있다. 최영준 효성 ESS팀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경쟁하기 위해선 최소 50명 이상의 ESS 전문가가 필요하지만 국내에선 현실적으로 좋은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철강 전문인력 기근을 해소하기 위해 아예 포스텍에 정원 120명의 철강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알루미늄업체 알코아 선임연구원 출신인 프레데릭 바라 교수, 세계 최대 산업용 베어링업체인 스웨덴 SKF의 철강기술센터 임원을 겸임하고 있는 하르샤드 바데시아 교수 등 실무 경험이 풍부한 교수진이 포진해 있는 것이 이 대학원의 특징이다.
“대학 등록금 1년치 투자해야 실무 배치”
공대를 졸업한 인재가 부실하다 보니 기업들에 당장이 부담이 되는 건 재교육 비용이다. LS산전이 공대 출신 신입사원들의 재교육에만 쓴 돈은 2년간 1인당 평균 400만원이 넘었다. 생산 직군은 431만원, 연구개발(R&D) 직군은 404만원에 달했다. 직군 내 세부 직무에 따라서는 최고 685만원까지 들기도 했다.
최소 공대 한 학기, 많게는 1년 등록금을 연봉과는 별도로 교육에 투자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 교육비는 사내 전기연수원에서 진행하는 직무·기술 교육 비용만 계산한 것이다. LS산전 관계자는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일을 못해서 드는 기회비용과 근무 중 이뤄지는 현장 직무교육(OJT)과 학습동아리(COP) 등을 더하면 공대 졸업생이 제대로 한 사람 몫을 하는 시점인 입사 후 2년까지 드는 비용은 1인당 수천만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