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 라이프] "통찰력으로 남들보다 앞서라"…亞 최초 BMW본사 '별', 김효준 사장

입력 2014-06-10 21:50   수정 2014-06-11 03:43

CEO 오피스 - 김효준 BMW그룹코리아 사장
세월호 참사 5일 뒤 新車행사 강행 "노란리본 달고 하자"

자동차 문화 전도사
드라이빙센터 등 업계 선도 "이동수단 아닌 문화 팔아야"

'진짜 고객만족' 얻어라
고객평가 백서까지 펴내…13년 만에 판매량 20배로



[ 최진석 기자 ]
김효준 BMW그룹코리아 사장은 세월호 참사가 빚어진 지 닷새가 지난 4월21일 임원회의를 열었다. 24일 BMW의 전기차 i3 신차 발표회를 앞두고 참사가 발생하자 행사 연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10여명의 참석자 모두가 예외 없이 발언했다. 행사를 연기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두 시간 동안 의견을 경청한 김 사장이 무겁게 입을 뗐다. “노란 리본을 달고 행사를 진행합시다. 슬픔이 크지만 규모를 줄여 겸손하게 진행하면 됩니다.” 대부분의 기업이 마케팅 관련 행사를 취소하는 가운데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이다. BMW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신차 발표회 때 노출이 심한 의상의 모델을 등장시키지 않았고, 별도의 포토 세션도 없앴다.

최고경영자(CEO)는 수시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때론 짧은 시간 내 힘들고 외로운 결정을 해야 한다. 그 결과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상황을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하고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회사 전체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 고졸 출신으로 국내 1위 수입차 업체 CEO 자리에 올라온 김 사장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이런 능력을 키워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라

노르베르트 라이트호퍼 BMW그룹 회장은 “‘HJ(김효준 사장의 영문 이니셜)’는 항상 경쟁자들보다 앞서 달려가는 CEO”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독일 BMW그룹 본사 경영진이 김 사장을 신뢰하는 이유는 꼭 실적이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회사 이미지와 브랜드를 끌어올리려는 경영 전략에 주목해서다. 그가 추진한 다양한 정책을 다른 법인들이 공유하도록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사장은 2011년 7월 ‘BMW코리아 미래재단’을 설립했다. 고객이 차를 살 때 3만원을 기부하면 BMW그룹코리아와 BMW파이낸셜코리아, 딜러사가 3만원씩 총 12만원을 기부하는 매칭그랜트 방식으로 재원을 확보했다. 수입사와 딜러, 차량 구매자 모두가 기부하는 제도였다.

이 재단의 사회공헌 기부액은 지난해 30억원 정도로 늘었다. 특히 재단에서 어린이 인재 양성을 위해 운영 중인 ‘주니어 캠퍼스’는 러시아 법인에서 벤치 마킹해 시행하고 있다.

자동차 문화를 선도하기 위한 시도도 눈길을 끈다. 다음달 개관을 앞둔 인천 영종도의 BMW 드라이빙센터가 그것이다. 드라이빙센터는 독일, 미국에 이어 한국이 세 번째다. 26만4000㎡(약 8만평) 부지에 700억원을 투입해 서킷을 포함한 복합문화공간이 들어선다.

김 사장은 작년 6월 열린 기공식에 참석해 “자동차 산업은 이동수단을 파는 게 아니라 문화를 파는 것”이라며 “드라이빙 센터는 자동차 문화를 진일보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멀티 플레이어가 돼라

지난해 1월 BMW그룹코리아 내에선 큰 폭의 인사가 있었다. AS 담당 상무가 마케팅으로 이동하고 마케팅 담당 상무는 세일즈로, 세일즈 담당 상무는 AS로 각각 자리를 바꿔 앉았다. 프리미엄 소형차인 미니(MINI) 총괄이사는 독일 본사로 파견을 갔고, 그 자리에는 주양예 홍보총괄이 승진 임명됐다.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제외한 사내 모든 임원의 역할이 교체된 것이다.

사내는 술렁였다. 과도한 순환 인사로 업무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불평이 나왔다. 하지만 김 사장은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업무 경험이 없으면 미래에 CEO 자질을 갖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냉엄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세상을 꿰뚫을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 자신도 다양한 경험을 위해 끊임없이 책을 읽는 독서광이다. 사장실에는 그가 탐독한 500여권의 책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회사 관계자는 “미술, 인문, 경영, 경제 등 분야를 가리지 않으며 이를 밑바탕으로 관련 업계 전문가들과 교류한다”고 전했다. 그가 참여하는 많은 모임 중 미술계 인사들 10여명이 분기마다 1회씩 모이는 자리가 있다. 이 모임에는 홍라희 리움 관장도 참여하고 있다.

“비장해야 이긴다”

김 사장은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오랫동안 CEO로 활동하면서 아쉬움도 많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하는 생각이 들면 이를 어떻게든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다. 지난해 ‘BMW 고객 서비스 평가단 백서’를 처음 발간한 것도 겸손하게 고객 입장에서 서비스 내용을 따져보자는 취지였다. 100인의 고객평가단을 구성해 전시장 대응부터 AS까지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도록 했다. 본사 내에서도 ‘이걸 왜 해야 하나’ ‘자기 무덤을 파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이에 김 사장은 직원들에게 ‘사즉생(死卽生)’을 강조했다. 김 사장은 “죽으려고 하면 산다는 정신이 필요했다”며 “고객들의 신랄한 평가를 받는 것은 ‘나를 죽이는 것’과 같지만 이를 통해 ‘진짜 고객만족’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이 기업이 사는 길”이라고 말했다.

고객을 항상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 철학 덕분에 김 사장이 경영사령탑에 오른 뒤 차 판매가 급증했다. 사장에 취임한 2000년 1650대를 팔았다. 13년 후인 지난해 판매량은 3만3066대로 20배 급증했다. 미니와 모터사이클 BMW모토라드의 판매량까지 합치면 4만695대에 달한다.

높은 성과를 인정받은 김 사장은 2003년 아시아인 최초로 BMW그룹 본사 임원에 오른 데 이어 지난해 본사 수석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제 BMW그룹코리아는 다시 한 번 도전과제에 직면했다. 수입차 업체 간 판매 경쟁이 치열하다. 폭스바겐코리아와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호시탐탐 1위 자리를 넘보고 있다. 토종업체인 현대자동차의 견제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김 사장에게선 두려움을 찾기 어렵다. 그는 “페어플레이 정신을 기반으로 한 경쟁은 늘 즐겁고 멋진 일”이라며 “그럴수록 자동차 문화는 성숙하고 소비자들이 얻는 이득은 클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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