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적격등급' 부도율 2년새 두배 뛰어
발행사에서 수수료 받는 구조…'乙' 전락
투자자에 실질 위험정보 제공 미흡 지적
[ 허란 기자 ] 무디스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의 기준을 적용하면 국내 기업 부도율은 신용등급·기간별로 최대 4배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신용등급을 부여받은 4개 회사 중 3개꼴로 A등급 이상을 받아 ‘신용 인플레’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은 국내 신평사들의 부도율 산정과 신용등급 부과가 투자위험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 장기적으로 제도를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투자적격’ 부도율 3년째 상승
12일 금감원이 국내 3대 신평사의 신용평가실적을 분석한 결과 ‘투자적격등급 회사채 부도율’은 지난해 0.50%로 2012년(0.41%)보다 0.09%포인트 높아졌다. 부도율은 연초 해당 신용등급을 보유한 업체 중 해당 연도에 몇개 업체가 부도를 냈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등급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측정하는 지표로 쓰인다.
국내 투자적격등급 부도율은 2009~2010년엔 0%에 머물렀지만 2011년 0.23%로 높아진 뒤 2012년에 이어 작년까지 상승세를 탔다. 특히 지난해 BBB급 구간의 부도율은 3.52%까지 치솟으면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지난해 동양시멘트 STX팬오션 등 BBB등급 기업들이 잇따라 부도를 낸 탓이다.
투기등급(BB+ 이하) 부도율은 지난해 6.24%로 2012년(15.66%)보다 크게 낮아졌다. 이는 투기등급에 해당하는 기업 수가 2012년 83개에서 작년 109개로 늘어나 부도율의 변동성이 커진 데 따른 것이라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실질 신용위험 반영 못해”
글로벌 신평사 기준으로 재산정한 국내 부도율은 최대 4배로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신평사들은 부도율을 계산할 때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나 파산 등 ‘법률적 부도’가 난 기업만을 대상으로 한다. 반면 글로벌 신평사들은 여기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나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적용에 따른 채무재조정 등을 포함하는 ‘경제적 의미의 부도’ 개념을 사용한다.
글로벌 신평사 기준을 사용하면 2009년과 2010년 투자적격등급 부도율은 각각 0%에서 1.65%, 1.36%로 뛰었다. 부도율 산정 기간을 늘리면 이 차이는 더 벌어졌다. 예를 들어 지난해까지 A등급 회사채를 3년간 보유했을 때의 부도율(3년 누적부도율)은 국내 신평사 기준으로 0.46%에 머물렀지만 글로벌 기준으론 1.96%로 높아졌다. 차이가 4배에 달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기준에 맞춰 워크아웃·기촉법에 따른 채무재조정 등도 부도율 산정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적격등급 비중 90% 돌파
신평사별로는 나이스신용평가의 부도율이 가장 높았다. 1998년부터 2013년까지 A등급과 BBB등급에 대한 3개 신평사의 경과연수에 따른 평균누적부도율은 모두 나이스신용평가가 가장 높았다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투자적격등급 회사채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8년 58.6%에서 작년 90.2%로 높아졌다. A등급 이상 기업의 비중은 1998년 34%에서 작년 77%로 커졌다.
작년 국내 신용평가시장 매출액은 814억원으로 2012년(905억원)보다 91억원(10.1%) 줄었다. 회사채 및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발행규모가 감소한 탓이다. 시장점유율은 회사채 발행시 복수의 신용평가를 받아야 하는 규정 때문에 나이스신평(33.9%) 한신평(33.2%) 한기평(32.8%) 3사가 비슷하게 차지했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시장 규모가 800억원에 불과한 상황에서 국내 신평사들은 평가대상 기업인 발행사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영업 구조를 갖고 있어 발행기업과의 관계가 등급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금감원은 동양그룹 계열사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의 신용등급을 매긴 3사 신평사에 대해 지난해 말부터 실시한 특수검사에서 등급평가와 관련 불법 영업의 정황을 일부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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