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뱅글·팀 거젤 등 세계적 디자이너들과 작업
미꾸라지 무리에 메기 풀듯
1200명 최대 디자인 조직에 끊임없이 신선한 자극 줘
[ 남윤선 기자 ]
삼성전자가 제품 디자인에서도 글로벌 최고로 발돋움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를 위해 애플 아이폰5S의 색상 및 소재 선정을 총괄한 유명 디자이너 베아트리체 산티치올리와 협업에 나선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제품 경쟁력뿐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세계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다.
산티치올리 디자이너는 3개월 전부터 제품 디자인 전반에 걸쳐 의견을 주는 방식으로 삼성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이미 산티치올리 디자이너가 참여한 일부 가전제품의 디자인이 완성된 상태로, 삼성은 내년 출시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티치올리 디자이너는 세계 최고의 CMF(색, 소재, 마감)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98년 나온 애플의 반투명 아이맥(iMac) 컴퓨터 색상 ‘번다이 블루’가 그의 작품이다. 아이맥은 ‘디자인 애플’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제품이다. 조너선 아이브 애플 디자인총괄 수석부사장이 제품 디자인을 맡았지만, 색은 산티치올리 디자이너가 정했다.
지난해 출시된 아이폰5S의 금속성 외관, 금·은색 컬러, 사파이어 크리스털 재질의 홈 버튼 등도 모두 산티치올리 디자이너가 지휘해 내놓은 작품들이다. 그는 애플 외에도 스와치, 베네통, 노르디카, 나이키 등과도 일한 경험이 있다.
삼성은 4~5년 전부터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제품 개발 때부터 적극적인 협업에 나서고 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불리는 크리스 뱅글과 가전제품 디자인을 같이했다. 최근 출시한 셰프컬렉션 등 프리미엄 가전제품 디자인을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에는 곡선 모양의 유리지붕으로 큰 관심을 모은 미국 뉴욕 맨해튼의 애플스토어를 디자인한 팀 거젤을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앞서 2009년엔 세계적 제품 디자이너인 후쿠사와 나오토를 영입한 후 파란색, 빨간색 등 원색을 입힌 넷북을 내놔 주목받았다.
삼성전자는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자체 디자인 조직을 갖고 있다. 디자이너가 1200명 이상으로 500명 정도로 알려진 애플의 두 배 이상이다. 디자인 조직에서 쓰는 예산도 한 해 수천억원에 달한다. 1971년 디자인 전담 부서를 만들었고 40년 넘게 확대해왔다. 특히 1996년 이건희 회장이 “기업 최후의 승부처는 디자인”이라고 언급한 뒤 디자인 투자를 계속 늘려왔다.
현재 이탈리아 밀라노, 영국 런던 등 해외 6개 도시에 디자인 사무소가 있다. 자체 디자인 역량도 만만치 않단 얘기다. 그럼에도 꾸준히 외부 전문가를 수혈하는 것은 경쟁을 더욱 촉진하기 위해서다.
1993년 이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미꾸라지를 키우는 논에 메기를 넣으면 미꾸라지들이 더 많이 먹고 열심히 움직여서 살이 찌고 건강해진다”고 말한 바 있다. 외부에서 꾸준히 자극을 줘야 내부 인원이 긴장하고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산티치올리 디자이너는 ‘삼성 정도의 회사면 스스로의 디자인이 누구보다 앞서간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소비자에게 끌려다닐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며 “회사 내 디자이너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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