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고위관료 집합소 된 KDI스쿨

입력 2014-06-15 20:44  

인사이드 스토리


[ 정종태 기자 ]
KDI국제정책대학원(KDI스쿨)에 퇴직 고위 관료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다. 경제발전 정책 수립 과정에서 쌓은 경험을 후학들에게 전수하기 위해서다. 일각에선 새 정부 들어 관료 출신들의 낙하산 인사 수요가 줄어든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도 있다.

KDI스쿨은 국제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 문을 연 전문 대학원으로, 특히 정책학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들어선 일반 대학원생과 공무원, 공기업 중간 간부 외에 한국의 경제발전을 배우기 위해 개발도상국에서 건너온 젊은 공무원이 부쩍 늘어나 수강생 절반이 외국인 학생이다.

15일 KDI스쿨에 따르면 올 들어서만 진념 전 부총리가 객원 교수진으로 합류한 데 이어 김대기 전 청와대 경제수석, 허경욱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전 기획재정부 1차관) 등이 서울 홍릉 캠퍼스에 연구실을 마련했다.

이들을 포함해 현재 KDI스쿨에서 강의 중인 전직 고위 관료로는 김기환 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전 상공부 차관), 서상목 전 보건복지부 장관, 양수길 전 OECD 대사, 변재진 전 복지부 장관,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 등 8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진 전 부총리가 최고 원로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열정으로 후학 양성에 나서고 있다. 진 전 부총리는 작년 말 삼정KPMG 고문직을 그만두고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 교수로 변신했다. 올 봄학기부터 3학점짜리 강의를 맡아 1주일에 두 번씩 강단에 선다. 그가 맡은 강의 주제는 ‘한국경제의 발전론’.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정책의 성공과 실패 사례 중심으로 가르친다.

KDI스쿨의 모든 강의는 영어로 진행되는데, 학교 측에서는 한국어 강의도 무방하다고 했음에도 진 전 부총리가 영어 강의를 고집했다고 한다.

진 전 부총리는 “마지막으로 영어를 사용한 것이 1994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1년간 초빙교수로 강의할 때였다”며 “20년 만에 영어를 사용하려니 솔직히 힘에 부치더라”고 했다. 그는 “그래도 욕을 먹지 않으려고 밤을 새워가며 강의 준비에 몰입하느라 체중이 줄었을 지경”이라며 “과거 자료를 모은 뒤 강의마다 영어로 된 파워포인트 자료를 60~70페이지씩 만드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허 전 대사도 작년 말 대사직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올해 봄학기부터 ‘공공재정’과 ‘국제경제’ 분야 강의를 맡고 있다. 몇몇 로펌 등에서 고문직을 제의했으나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허 전 대사는 “강의를 할 때마다 우리 경제발전 노하우를 배워가려는 개도국 공무원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면서 관료 시절 느끼지 못했던 보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허 전 대사는 기재부 등이 추진하는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에도 적극 참여해 개도국 현지를 방문, 경험 전수에도 나서고 있다.

김 전 수석은 ‘한국의 경제성장’을 주제로 부정기적으로 강의하고 있다. 김 전 수석은 “학자들이 강의하는 경제발전론에는 실제 정책 참여 과정에서 느끼고 경험한 고민이 빠져 있다”며 “관료 시절 경험을 살려 과거 실패했던 정책 사례를 중심으로 강의하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꽤 좋다”고 전했다.

한 전직 관료는 “세월호 참사 이후 형성된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 분위기 때문에 앞으로 관료 퇴직자들이 KDI스쿨로 더 모여들 것 같다”고 말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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