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2기 내각만 협업하라고 ?

입력 2014-06-17 20:51   수정 2014-06-18 05:38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빅토리아 왕조 때도 정책조율이 잘 안되는 게 여왕의 큰 걱정이었다고 한다. 19세기 세계 최강국,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 행정의 한 단면이다. 대공황이 강타한 1930년대 미국서도 그랬다는 평가가 있다. 국가적 위기에서도 부처 간 손발은 엇나갔다. 고대 로마 때부터 관리들 간 대립으로 황제가 고민했다는 기록까지 있다. 조선 당쟁사 역시 행정에선 관료들의 파벌 다툼이었다. 지난주 세미나에서 만난 노르웨이의 인재양성 전문가도 그런 고민을 전했다. 소득 9만5000달러의 선진 이성국가조차 그렇다.

관료들 습성이 원래 그렇다. 행정과 공권력의 속성일지 모른다. 사실 모든 정부기관에는 정책적 목표가 뚜렷이 있다. 움켜쥔 법과 규정집에는 나름의 논리와 철학도 있게 마련이다. 그걸 오로지 본인 업무, 자기 기관의 입장에서만 보면 법리를 가장한 고집이 된다. 때론 조직논리를 위장한 집행관료들의 이익이다. 많은 규제도 그렇게 생긴다. 대개 내부 논리에 충실하는 게 조직에 충성으로 착각됐다. 부처 이기주의란 비판이 거세질수록 내부 결속력은 강해지곤 했다. 관피아 문화 역시 그렇게 축적됐다.

로마황제도 빅토리아여왕도 고민

박근혜 정부 2기 내각이 워밍업 중이다. 팀워크로 일하라! 내부의 소통을 더 하라!는 주문이 나온다. 실체가 모호한 책임총리 논란은 총리가 사퇴의사를 밝힌 그날부터 시작됐다. 그래서 사회부총리도 기안된 것 같다.

문제는 정부 내 팀워크가 쉽지 않은 덕목이라는 점이다. 동서양의 사례를 봐도 그렇다. 현 정부에서도 행정협업은 거듭 강조됐으나 잘 안됐다. 기관 내부에서도 어려운 판에 타부처와 손발을 척척 맞추라니! 그렇다고 포기해야할 가치인가. 그 반대다. 어려운 만큼 더 중요해졌다. 지금 더 강조되는 이유도 갈수록 절실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사회부총리 신설에 대한 신중한 우려도 부처 간 협력이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에 대한 역설적 경고다. 정부조직법을 바꿔서라도 이번에야말로 팀워크 전통을 제대로 세울까. ‘협력, 조정, 사전협의, 공동추진….’ 이런 관가 용어는 언제나 근사하지만 현실을 분명히 인식하지 못하면 팀워크는 또 한 번 신기루다. ‘나는 예외 주의’, ‘우리 부처 중심 원칙’이 늘 걸림돌이다. 관료의 한계다. 똑똑할수록, 자기 신뢰가 넘칠수록 협력이나 양보와는 멀어지는 게 일반법칙이다.

“야, 인마 ! 급한 통화란 말야 !”

관건은 장관이다. 명확하게 임무 먼저 파악한 장관이 정권의 책임의식을 분명히 느낄 때 양보도, 팀워크도 가능해진다. 협력이 신뢰의 산물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부처 안에서만 인기 장관이면 타부처와 공조는 오히려 멀어질 수 있다. 이 정부의 주역이라는 생각 없이 얼굴사장처럼 장관실로 조심조심 들어서는 순간 노회한 관료들의 볼모가 될 게 뻔하다. 청와대 동향이나 살피고 대통령 말 받아 적기에 열심인 장관은 이제 지겹다. “적지 않고 (그 많은 협의를) 어떻게 기억을 해요?”라고 했다는 대통령의 언급이 사실일지 모른다. 그래도 정부 책임자라 자부한다면 카메라 앞에서도 범생이 학생처럼 받아쓰진 않을 것이다. 합리적 권위까지 내던지고도 행정이 잘될까.

인터뷰조차 정책적 판단에서가 아니라 ‘요즘 청와대 분위기가 좀 그래서…’라며 회피하는 식이면 2기 내각도 보나마나다. 협업은 장관의 소신과 비례, 눈치엔 반비례하게 돼 있다. 장관쯤 되면 소위 비서실 3인방이 가로막아도 큰 소리로 대통령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야, 인마! 급한 통화란 말이야!”라며.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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