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법률서비스 형편없어"…변호사 잡는 '샤크변호사'

입력 2014-06-17 21:10   수정 2014-06-18 04:20

의뢰인, 무능한 변호사에 과실 책임 물어
대기업 법무팀도 수임료 환불 등 적극 대처



[ 배석준 기자 ] “헌법상 사유재산권의 연혁 개념 등 불필요한 내용이 A4 용지로 17쪽이나 된다니 말이 됩니까.”

A그룹 부장이 비용 청구를 위해 연락한 로펌 담당자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A그룹은 최근 건물을 지으면서 내장재 방수설계 등을 하도급업체에 맡겼다. 그런데 원자재 가격이 올라 추가 비용이 발생하면서 비용 분담 문제로 하도급업체와 법률 분쟁이 생겼고, B로펌에 자문했다. 문제는 이 로펌이 사건 해결과는 직접 관계없는 내용으로 법률자문서를 가득 채워 시간당 23만원을 청구한 것이다. 결국 담당 변호사를 자문팀에서 빼고 관련 자문료를 지급하지 않는 선에서 양측 간 갈등이 일단락됐다.

전문적인 법률지식이 없는 변호사가 많아지면서 이들의 법률 서비스에 불만을 나타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불성실하거나 실력 없는 변호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일명 ‘샤크(shark) 변호사’도 등장했다.

박모씨는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이혼소송을 진행했다. 한국 법원에서는 ‘부부가 서로에게 재산 분할을 청구하지 않는다’는 강제조정이 내려졌다. 그런데 한국 소송을 맡은 C변호사가 강제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미국에서도 재산 분할을 청구하지 못하게 됐다. 이에 박씨는 C변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최근 대법원에서 승소 취지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또 부동산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에 압류가 됐지만 이에 대해 적절한 항변을 하지 못해 패소한 의뢰인이 자신이 고용한 변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승소한 판결도 서울중앙지법에서 나왔다.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 부회장은 “좁은 시장을 놓고 약 1만8000명의 변호사가 수임 경쟁을 벌이고 있고, 매년 2000명의 신규 변호사가 진입하고 있다”며 “앞으로 미국처럼 변호사가 소송 수행을 잘못한 변호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법무팀도 자문료 등을 아끼기 위해 샤크변호사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D그룹은 얼마 전 10대 로펌에 정관 변경을 의뢰했다. 그런데 주주총회에서 주주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하는 특별결의와 주주 전원의 동의를 요하는 특수결의의 차이를 몰라 엉뚱한 정관을 만들어 왔다. D그룹은 당장 자문료 환불을 요청했다.

4대 그룹 한 법무팀 관계자는 “로펌에서 뽑은 질 떨어지는 변호사로 인해 대기업에 법률 비용이 전가되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는 “지금까지는 무능한 변호사를 배제해 달라는 등 소극적으로 대응해왔지만 앞으로는 수임료를 주지 않는 것은 물론 로펌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10대 그룹 한 관계자는 “국내 10대 그룹 법무팀은 단순히 법률 검토를 하는 데서 벗어나 수익 창출로 역할이 진화하고 있다”며 “경쟁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불성실한 법무법인 등을 상대로 한 소송도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소송 천국’ 미국에는 변론 잘못 등으로 의뢰인에게 피해를 끼친 변호사를 상대로 소송을 수행하는 변호사가 많다. 변호사 소개업체인 미국 로이어닷컴에 따르면 뉴욕에만 수백명의 변호사가 이 소송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미국에서 10여년간 근무한 박석준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변호사 과실에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한 정서”라고 말했다. 6대 로펌의 또 다른 미국 변호사도 “한국에서는 동료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그동안 다른 변호사를 상대로 소송하는 것은 드물었다”며 “하지만 변호사시장 상황이 악화되고 있어 앞으로 유대감이 무너질 것”으로 내다봤다.

배석준 기자 eul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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