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후보 사퇴] 인사청문회 뭐하러 있나…법 대신 '여론재판'에 기댄 정치권

입력 2014-06-24 20:52  

朴정부 총리후보 3명 청문회 문턱도 못가
"선거 앞둔 여야·靑 정치적 고려의 산물"



[ 정종태 기자 ] 여야는 물론 청와대 등 전방위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아온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친일 사관’ 논란에 따른 여론의 뭇매를 이기지 못한 채 24일 자진해서 물러났다. 전관예우나 재산 병역 등 ‘도덕성 문제’가 아닌 사상 검증 문제로 고위 공직 후보자가 청문회 문턱도 가보지 못한 채 낙마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문 후보자의 사퇴는 겉으로는 ‘자진 사퇴’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상 7·30 재·보선 등을 앞둔 상황에서 임면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지명 철회’라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인 해석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문 후보자가 법에 정해진 청문회 절차를 통해 검증받기도 전에 낙마한 것은 재·보선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여야의 정치적 협공과 선거를 앞두고 부담을 느낀 청와대의 정치적 고려가 어울린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에 이어 두 명의 총리 후보자가 연달아 청문회를 통한 검증 기회를 갖지도 못한 채 낙마하자 일각에선 “이런 마당에 청문회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박 대통령은 이날 문 후보자의 자진 사퇴 기자회견 직후 민경욱 대변인을 통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검증해 국민의 판단을 받기 위해서인데 인사청문회까지 가지 못해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끝까지 국회에 보낼 임명동의안 및 인사청문요청서를 재가하지 않은 것이 청문회 전 문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만들어낸 직접적 요인으로 보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으로선 임명동의안을 재가해 청문회까지 가더라도 인준 표결이 부결될 경우 오히려 정치적 파장이 커질 수 있다는 점과 문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국정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끝까지 재가를 미뤘던 것 같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재가를 미룬 것에 대해선 여권 내부의 기류 변화가 결정적이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후보자 지명 초기에만 해도 여권 내부에서는 옹호 입장이 주류였지만 7월 말 재·보선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며 “특히 7월14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도전자들의 선명성 경쟁으로 문 후보자의 사퇴 압력이 거세지면서 청문회 통과마저 불투명해진 것이 박 대통령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의 사퇴 압력에도 꿋꿋이 버티던 문 후보자는 박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지난 21일 이후 직간접적인 통로를 통해 박 대통령의 의중을 확인하고 자진 사퇴를 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문 후보자 사퇴로 박근혜 정부는 출범 당시 김용준 초대 총리 후보를 포함해 세 명의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장 문턱을 넘기도 전에 낙마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특히 안 전 후보에 이어 문 후보까지 두 명의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를 앞두고 연달아 낙마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2000년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낙마한 총리 후보자는 6명으로 늘어났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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