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는 "양적완화 통한 경기부양" 정반대 시각
[ 김보라 기자 ] “세계 금융시장은 ‘위험한 행복’에 도취해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세계 경제에 지나친 자산 거품이 형성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중앙은행을 대표하는 기구인 BIS는 29일(현지시간)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세계 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 그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지만 금융시장은 이상할 정도로 활황이라고 지적했다. BIS는 또 금융시장이 각국 중앙은행의 ‘마법(양적완화)’에 빠져 현실과 엇박자를 내고 있다며 이른 시일 내에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는 금리 인상을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BIS는 은행의 자산 건전성과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평가하는 기구다. 따라서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각국의 양적완화 정책에 회의적인 태도를 고수해 왔다. 경제가 실제로 회복되지 않고 대출을 통해 자산 가격만 부풀려지면 금융 체계 전반이 불안정해진다는 판단에서다.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이 더 적극적으로 경기부양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정반대의 시각이다.
BIS 집계에 따르면 올 1분기 세계 경제성장률은 평균 3%로, 금융위기 이전인 1996~2006년의 1분기 성장률 평균치 3.9%를 밑돌았다. 그러나 부채는 빠르게 증가했다.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 때문에 싼값에 빌릴 수 있는 자금이 늘고 정부가 적자 예산을 편성한 탓이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의 총 부채 규모는 연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를 넘어섰다.
유동성이 늘면서 금융시장은 이례적 랠리를 펼치고 있다. 글로벌 증시를 대표하는 FTSE세계지수는 올 들어 5%, 2009년 3월 저점 대비 150% 올랐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올해 30년 만에 랠리가 끝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하락세(채권 가격 상승)다. 투자부적격 등급인 정크본드 등 고위험 상품에도 투자자가 몰리고 있다. 미국 증시의 변동성 전망을 나타내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선물거래소의 변동성지수(VIX)는 7년 만에 저점 수준에 머물러 있다.
BIS는 각국 정부가 지속 불가능한 자산 거품을 부추기는 정책을 당장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시장의 반응을 우려해 기준금리 인상 등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를 늦추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현송 BIS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 금융위기 때는 은행이 주인공이었으나 기관투자가를 포함한 다른 부문으로 위험이 확산됐다”고 경고했다.
클라우디오 보리오 통화경제국장도 “과다한 차입에 의존하는 성장 전략에서 벗어날 새로운 나침반이 절실하다”며 개혁을 당부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러나 BIS의 경고를 각국 중앙은행이 새겨들을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 BIS는 그동안 초저금리와 자산 매입 등 양적완화 정책의 부작용을 끊임없이 경고했지만 중앙은행들은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유럽중앙은행(ECB)는 이달 초 마이너스 금리를 발표한 데 이어 미국식 대규모 양적완화도 고민 중이다.
BIS는 2003년에도 금융위기 가능성을 우려하며 각국 중앙은행에 기준금리 인상을 촉구했지만 경기부양책에 집중하던 중앙은행들은 귀를 막았다. BIS의 당시 경고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고한 셈이 됐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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