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연 정치부 기자) “새벽 6시에 버스를 타러 공주터미널에 갔을 때입니다. 마을 이장님 한 분이 표 두 장을 끊어놓고 기다리시더군요.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서 두 시간 내내 지역민원 관련해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더니 나를 서울에 내려놓고 ‘박 의원 잘 가. 나는 다시 내려갈게’라며 돌아갔습니다. 내가 출퇴근을 고집하는 이유입니다."
충남 공주가 지역구인 박수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회식을 하다가도 9시30분이 되면 잔을 내려놓고 자리를 뜨곤 합니다. 기자들이 소매를 붙들어도 정중하게 사양합니다. 10시께 막차인 공주행 고속버스를 놓치면 귀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간혹 막차를 놓치기도 하는데, 그럴땐 택시를 탄다고 합니다.
지방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대부분의 의원이 서울에 숙소를 마련해 두는 것과 달리 박 의원은 매일 고속도로를 달려 출퇴근 합니다.
소요시간은 편도 1시간50분. 박 의원한테 고속버스 출퇴근을 고집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박 의원은 “국회의원 당선되기 전 선거운동을 하는데 어느 아버님이 ‘국회 들어가면 지역에는 코빼기도 안 비친다’고 나무라셨다”며 “나는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아예 출퇴근 하기로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당선 후 국회에 입성하기 전 며칠 동안 ‘시범출근’을 해 본 후 만 2년째 공주-여의도 출퇴근을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막상 시작해 보니 생각보다 얻는 것이 많다고 했습니다. 박 의원은 “지역 주민들 하나하나 찾아뵙고 이야기를 듣는 게 사실 어려운 일”이라며 “그런데 나는 집에 가는 길에 편하게 지역 주민들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그는 고속버스에서 들었던 민원 81개를 모두 해결한 이야기를 모아 ‘고속도로 민원실’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또 박 의원은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어르신들이 결국 내 지역구 유권자들시다”라며 “출퇴근을 하는 가장 ‘정치적인 이유’”라며 웃었습니다. “고속버스에 올라타는 나를 보고 기뻐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정책 보좌관 출신으로 19대 국회에 입성한 박 의원은 국회 내 ‘젠틀맨’으로 통합니다. 국회 내 유일한 ‘안희정 계’로 통하기도 합니다. 그의 삶이 마냥 ‘젠틀’ 했던 것은 아닙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군대에 끌려갔고, 제대하자마자 경찰에 연행돼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당 내에서 지도부에게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초·재선 그룹인 ‘더 나은 미래’ 소속이기도 합니다. 박 의원은 “누군가는 내가 점잖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더 나은 미래’ 소속 의원들과 생각이 다르지 않다”며 “충청권 의원으로서 입지가 좁다 보니 더 강경하게 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박 의원은 최근 김한길 공동대표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됐습니다. 비서실장은 대표를 그림자처럼 수행해야 합니다. 지난해처럼 김 대표가 노숙투쟁을 했을 때였다면 퇴근은 어림없었겠죠.
다행스럽게 그가 비서실장이 된 후 김 대표가 저녁 술약속을 잘 잡지 않아 지금까지는 어김없이 공주집으로 퇴근하고 있다고 합니다. 7.30 재보궐선거와 인사청문회를 놓고 여야가 정쟁모드로 들어가 있는 것이 그의 ‘출퇴근 프로젝트'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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