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중심 경영에 앞장
수수료 장사 더이상 안돼
천편일률 매수 리포트 '퇴출'
실력 무장하고 고객 기다려야
주주이익 극대화
전문가 중심 회사로 환골탈태
비용수익비율 등 지켜봐달라
연봉제 확대로 우수인력 영입
[ 이태호 기자 ]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서 회사 이미지나 지위를 개선하려는 게 더 이상적인 발상 아닌가요?”
박재황 한화투자증권 부사장(경영지원본부장·51·사진)은 3일 한화의 ‘고객중심 경영’ 전략이 지나치게 이상적이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과당매매 금지, 매도 리포트 의무 발간 등 경쟁사들이 영업실적 악화를 우려해 주저하던 과제를 실천에 옮기는 것은 위기에 처한 증권업 현실을 직시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박 부사장은 “증권업 경영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증권사들이 사은품을 나눠주고 거창한 행사를 진행하거나 지점을 화려하게 꾸미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고객 자산을 누가 잘 관리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가 고객 중심 경영에 앞장선 배경은 무엇인가요.
“핵심은 회사가 단기 실적 또는 개인의 성과를 중시하느냐, 아니면 고객 이익을 중시하느냐에 있습니다. 전자를 중시한다면 규모에 관계없이 고객과의 신뢰 관계가 장기적으로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증권사들은 수수료 장사만 해왔다고 심하게 비난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지요. 고객을 위한 영업이 아니라 회사나 영업직원을 위한 영업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증권사에 대한 고객 신뢰는 남김없이 무너졌습니다. 대형사일수록 대주주나 금융시스템과 관련한 이해관계에 얽매여 과거의 경영 구조를 바꾸기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반면 중견 증권사는 단기 성과에 대한 시장의 감시와 압박이 덜한 편입니다. 한화가 과감하게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배경입니다.”
▶실적에 부담이 크지는 않나요.
“변화 내지 혁신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회사도 단기 성과와 실적만 보면 부담이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은 실천이라도 고객 중심 경영에 집중해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 더 많은 고객이 회사를 찾아올 걸로 믿습니다. 방향이 맞냐 틀리냐는 고객에게 물어보면 확실히 답이 나옵니다. 그동안 거래하면서 불편했거나 불만이 무엇이었는지를 물으면 증권사 직원의 끊임없는 주식 매매 권유와 상품 교체 권유에 지쳤다는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천편일률적인 매수 리포트에도 불만이 큽니다. 신뢰 회복에 필요한 것은 시간과 우리 직원들의 역량 강화입니다. 필요한 것은 실력으로 무장하고 고객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중장기적인 목표가 있다면요.
“고객이 찾아오고 싶은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직원들도 가족에게 회사에 다녀오겠다고 말할 때 더 떳떳하고 자랑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전문가(professional) 중심의 회사를 만들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개별 연봉제를 확대하고 최우수인력 영입에도 적극 나설 계획입니다. 기존 인력의 역량 강화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주주와 고객, 임직원 모두에게 이로운 회사를 만들려고 합니다.”
▶주주 관점에선 어떤 기대를 가질 수 있을까요.
“작년에 시행한 대규모 감원과 급여 삭감으로 흑자를 낼 수 있는 기본 토대를 구축했습니다. 앞으로 회사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비용수익비율(CIR·cost income ratio), 고객 만족도, 자산 증대 추이를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셨으면 합니다. 업계 최초로 도입한 임원 주식보유 제도 역시 경영진이 중장기 관점에서 주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증권업황 진단과 전망은 무엇입니까.
“60여개 증권사들이 좁아진 시장에서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작년엔 증권사 합산 손익이 10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단기 실적 중심의 영업 행태를 고수해온 증권사에 대한 불신으로 고객 기반이 무너진 때문입니다. 기존 영업행태를 고수하면서 단기 실적 개선을 위한 묘책을 짜내는 방식으로는 업계의 위기를 결코 극복하지 못합니다. 대형 증권사는 자본력이나 브랜드 우위를 바탕으로 연명이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확실한 고객기반, 비용구조의 우위, 수익구조 차별화를 이루지 못한 다른 증권사들은 살아남기 힘들 겁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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