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P파리바 벌금부과에 반발…反달러 기류 확산
中도 달러견제 본격화…위안화 무역결제 2위 급부상
[ 이심기 기자 ] 프랑스가 국제 결제시장에서 달러의 독주를 끝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미국이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압도적 지위를 무기 삼아 횡포를 부리고 있다는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미셸 사팽 프랑스 재무장관은 6일(현지시간) 프랑스 엑상 프로방스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 파이낸셜타임스(FT) 등과 인터뷰하고 “글로벌 결제시장에서 사용되는 통화에 대한 리밸런싱(재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내에서 물건을 사고팔 때조차 달러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며 “달러를 꼭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달러 대신 유로화 사용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뜻이다. 사팽 장관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로재무장관 회의에서 ‘달러의 지배’를 거론하겠다고 밝혀 유럽연합(EU) 내에서 이를 공론화할 계획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특히 “유로화뿐 아니라 국제무역에서 비중이 커진 신흥국의 주요 통화도 국제 결제에 쓸 수 있다”고 언급했다. 구체적인 통화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유럽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위안화를 통해 달러를 견제하겠다는 점을 시사했다.
중국은 올 들어 영국 런던에 이어 프랑스 파리와 룩셈부르크에 위안화 청산결제거래소를 설치하기로 하고 해당국과 합의하는 등 위안화 국제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가 발표한 최근 자료를 보면 위안화가 세계 무역거래에서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는 비중은 지난해 8.7%로, 달러(81.0%)에 이어 2위에 올랐다. 2012년 1월만 해도 이 비중은 1.9%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미국 달러화 비중은 84.9%에서 81.0%로 줄었다. 영국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2020년까지 국제 무역결제의 28%가 위안화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프랑스의 이 같은 ‘반(反)달러’ 기류는 최근 미국이 프랑스 최대 은행인 BNP파리바에 89억달러(약 9조원)의 벌금을 부과한 데 따른 반발의 측면이 강하다. BNP파리바는 이란 등 미국이 정한 제재국과 불법 거래를 했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로부터 천문학적인 액수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이에 프랑스는 은행이 EU의 규제를 어긴 것이 아닌 만큼 벌금이 부당하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유럽 은행들이 각종 법 위반을 이유로 미국 정부로부터 부과받은 벌금만 120억달러(약 12조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프랑스의 이 같은 주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FT는 세계 주요 중앙은행이 달러화의 안전성과 유동성을 대체할 통화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하루 평균 5조달러에 달하는 외환거래의 87%는 달러를 통해 이뤄졌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도 외환보유액의 60.9%를 달러로 갖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중앙은행(Fed)이 초저금리와 함께 무제한 돈풀기에 가까운 양적완화 정책을 펼쳤음에도 달러의 지위는 요지부동이다. 기축통화로서의 지위가 흔들리기는커녕 달러가 풀릴수록 몸값이 치솟는 ‘달러의 역설’이 힘을 얻고 있다. 프랑스 고위 당국자도 “시장이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해 프랑스 정부의 주장이 쉽게 현실화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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