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금융권 원로 윤병철 한국FP협회장 "금융지주 회장에 행장 선임권 준 뒤 경영책임 물어야 지주체제 안정될 것"

입력 2014-07-13 23:34  

사고예방은 매뉴얼보다 직원 교육으로 풀어야
정부는 금융업을 '돈 벌 수 있는 산업'으로 인정해야
후배들, 나라경제 지탱했다는 자부심·열정 가졌으면



[ 박신영 기자 ]
“잊혀진 사람인데 뭐하러 왔습니까. 큰 도움도 안 될 건데….”

윤병철 한국FP협회장(77)은 이렇게 만남을 시작했다. ‘잇따르는 비리와 사고, 대규모 제재, 지주회사 체제의 앞날, 수익성 강화 방안 등 금융계 현안에 관한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하자 ‘이미 물러난 지 오래된 사람’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가계의 효율적 자산 운용과 금융소비자 보호 활동을 펼치는 FP협회를 이끌고 있는 윤 회장은 금융권 생활만 54년인 ‘최고참 금융인’이다. 바람 잘 날 없는 금융계 풍토 탓에 존경받는 원로가 흔치 않은 상황에서 많은 후배가 따르는 금융맨이기도 하다. 그는 농업은행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개발금융 한국장기신용은행 한국투자금융 하나은행 등 여러 업종을 거쳤다. 관치금융에서 금융 자율화까지, 단자회사에서 금융지주사까지, 말 그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셈이다.

최고경영자(CEO)로 지낸 기간도 20여년이다. 특히 2001년에는 국내 최초의 금융지주회사인 우리금융지주 초대 회장을 맡아 안착에 기여하고 큰 잡음 없이 경영권을 물려줬다. 이후 지주회사 CEO 선임 때마다 이전투구가 벌어지면서 윤 회장의 깔끔했던 행보에 대한 평가는 더 높아지고 있다.

인터뷰 초반에 말을 아끼던 윤 회장은 현안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잠시 마음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송곳처럼 핵심을 찌르는 답변을 시작했다. ‘경험은 최고의 선생’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그는 세 가지를 강조했다. 우선 금융을 ‘산업’ 그 자체로 인정해 금융회사가 돈 버는 것을 죄악시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했다. 경영진 간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지주사 회장이 모든 인사권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사고에 대비하려면 매뉴얼 재정비보다 금융업 종사자들의 자세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업이 어렵습니다. 수익성이 나빠지고 사고도 끊이지 않습니다.

“금융계에 오래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국내 금융산업이 동남아 국가보다 뒤진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각종 규제와 저금리 기조 등으로 수익을 올리기 어려운 환경인 것이 사실입니다. 금융인 모두가 똘똘 뭉쳐 노력해도 힘든 상황에서 일부에선 경영진 간 갈등도 불거지고 있어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잇따라 불거지는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 간 갈등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장관이 은행장을 선임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관치금융 시절이었죠. 요즘은 대표이사추천위원회가 만들어져 자체적으로 뽑고 있습니다.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지요. 하지만 여전히 외부의 ‘안 보이는 힘’이 작용하는 듯 합니다. 외부의 힘에 따라 행장과 지주 회장이 뽑힌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회장이든 행장이든 ‘낙하산’으로 뽑힌 다음에는 각자 다른 믿는 구석이 있으니 서로 협조가 될 수 없지요. 그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낙하산’의 이유는 결국 금융회사의 주인이 없어서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주인이 왜 없습니까. 주주가 주인이지요. 문제는 경영진이 성과를 투명하게 평가받아야 하는데 정치권을 등에 업고 객관적인 평가를 받지 않고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CEO의 권한에 맞는 책임을 지도록 만들어야지요. 그건 금융그룹 내부 사람들의 열정과 기강, 주인의식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맡을 당시 은행장과 갈등설이 있었습니다만.

“저는 회장으로서 그룹 전체의 규모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려면 자회사 중 가장 덩치가 큰 은행의 도움이 필요했지요. 반면 은행장은 은행의 성장에 집중하고 싶어 했고요. 자연스럽게 긴장관계가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복되는 지주사 회장과 행장 간의 갈등을 풀 해결책이 있을까요.

“지주 회장이 인사권을 갖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지주사 회장에게 경영 책임도 철저히 물어야지요. 인사권만 있고 경영 잘못에 대한 엄한 비판이 없으니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권 4대 천왕’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까.”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을 겸임하는 건 어떤지요.

“은행장과 지주사 회장을 겸임한다면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지요. 지주회사 체제가 나타나기 전에는 은행이 자회사 모두를 갖고 있었습니다. 은행장은 은행의 실적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자회사인 증권회사보다는 은행에 편향된 결정을 하는 폐해가 생겼지요. 지주회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일각에서는 금융지주회사 무용론이 나옵니다.

“금융지주회사가 쓸모없다기보다 금융지주회사 체제를 제대로 운영하지 않은 탓입니다. 우리나라 금융지주회사 체제는 미국을 따라 만들었습니다. 전제 조건은 겸업화였습니다. 은행 증권 카드 등 금융지주의 자회사들이 시너지를 내고 비용을 절감하며 일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금융지주회사는 이도 저도 아닌 형태가 돼버렸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국회가 최근 금융지주회사 내 고객정보 공유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사실상 지주사 체제의 근간이었던 정보 공유 장치가 없어진 거지요. 게다가 금융지주회사법에는 지주회사가 자회사의 주식을 소유하고 자회사 경영 관리와 부수 업무를 수행한다고 돼 있지만, 회사법에서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주주로서 유한책임만을 집니다. 금융지주회사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법이 정비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진행 중인 우리금융의 민영화 과정을 보면서 초대 회장으로서 소회가 남다르실 텐데요.

“겸업화를 통해 시너지를 내고, 비용 절감을 하는 등 지금까지 오는 데 10년 넘게 걸렸습니다.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그걸 해체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금융회사 겸업화는 세계적 추세입니다. 공들여 쌓은 탑을 무너뜨리는 것 같은 심정입니다.”

▷금융사의 수익성을 강화하는 방법은 뭘까요.

“근본적인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금융업을 다른 산업을 지원하는 도구 정도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독자적인 수익을 내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도록 했지요. 그래서 규제도 심했고요. 정해진 틀 안에서 경쟁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발전도 없었습니다. 금융상품 가격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합니다.”

▷해결책으로 해외 진출은 어떻습니까.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기간에 성과를 올리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20년 후를 바라보고 꾸준히 준비해야지요.”

▷금융권에 사고가 끊이지 않는데요.

“기강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사고 방지를 위한 매뉴얼은 충분히 있습니다. 직원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교육은 끊임없는 반복으로 완성되고요.”

▷원로로서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지요.

“금융업이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받으려면 금융인들부터 잘해야 합니다. 과거 업황이 좋았을 때 소비자들에게 금리 인하 등으로 혜택을 돌려주기보다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데 급급했지요.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한국 금융사들은 비난받고 있지만 경제를 지탱한 공도 있습니다. 자부심과 열정을 갖고 열심히 일 했으면 좋겠네요.”

윤병철 한국FP협회장은 금융권 54년 재직한 '최고참'…국내 첫 금융지주 회장 역임

윤병철 FP(재무설계사)협회장은 농업은행에 입사하며 금융권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하나은행 전신인 한국투자금융 사장을 거쳐 하나은행장, 하나은행 회장,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로만 20년 가까이 재직했다. 자신이 설립해 ‘분신’처럼 여긴 하나은행 행장 3연임을 앞두고 1997년 전격적으로 사퇴한 일로 유명하다.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서였다. 당시 김승유 하나은행 전무가 윤 회장에 이어 하나은행을 맡았다.

△1937년 경남 거제 출생 △1953년 하청고 졸업 △1958년 부산대 법대 졸업 △1960년 농업은행 입행 △1977년 한국개발금융 부사장 △1981년 장기신용은행 상무 △1985년 한국투자금융 사장 △1991년 하나은행 초대 행장 △1997년 하나은행 회장 △2001년 우리금융지주 회장 △2009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현재 한국FP협회장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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