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투자자 손실 불가피...기업 구조조정도 차질 예상
원금 손실 본 연기금 “투자할 PEF가 없다”..사모펀드업계 불신 키워
이 기사는 07월09일(17:05)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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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사모펀드(PEF)의 대표격인 보고펀드는 2007년에 인수했던 MP3업체 아이리버를 지난달 295억원에 매각했다. 7년전 인수가격인 600억원의 반에도 못미치는 값이다. 그동안 쏟아부은 이런저런 비용을 감안하면 ‘거의 공짜로 넘겼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손절매이다.
사모펀드들에 비상이 걸렸다. 만기가 다가오고 있지만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투자했던 기업을 팔아야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돈을 지급할 수 있는데 팔지 못한 매물은 쌓여만 간다. 헐값으로 손절매를 불사하지만 씨앤앰, HK저축은행, 메가박스, LG실트론, 이트레이드증권, 테크팩솔루션 등 매물리스트를 채우고 있는 기업들의 숫자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다. 한국경제신문의 자본시장 전문매체인 마켓인사이트가 국내 사모펀드 제도가 도입된 2005년 이후 투자현황을 조사한 결과, 펀드 설정 이후 5년이 지났는데도 회수하지 못한 자금은 총 6조1160억원(18개 기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희석 한화생명 투자전략본부장은 “사모펀드는 통상 설정 후 5년 정도 되면 매각에 착수한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 투자했던 사모펀드들의 만기가 속속 돌아오고 있지만 자금회수가 원활하게 안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선정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현 나무코프 대표)은 “사모펀드들이 활발하게 기업인수에 나섰던 2007년~2008년 기업 매매 시장에 거품이 끼었던 게 부메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모펀드들이 당시 비싼 값에 기업을 인수했고, 따라서 매각희망 가격도 기업가치에 비해 높게 형성되고 있다는 것. 또 장기간 불황이 지속되면서 적극적으로 M&A(인수·합병)에 나설 여력이 있는 기업이 대폭 줄어든 것도 거래가 사라진 원인으로 꼽힌다.
사모펀드가 자금회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파장도 커지고 있다. 투자 기업인 LG실트론 매각에 차질을 빚고 있는 보고펀드에 시중은행들은 차입금 상환을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이달 25일 차입금 상환 만기가 연장되지 않으면 ‘사모펀드 채무불이행’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부 연기금들은 올해 계획했던 사모펀드와 벤처펀드 출자를 내년 이후로 미루는 방안에 대해 검토에 돌입했다.
2008년 국내 M&A 시장을 달군 기업중 하나는 씨앤앰이다. 유선 케이블TV업체인 이회사 인수를 두고 사모펀드간에 뜨거운 경쟁이 붙었다. 특히 엎치락 뒤치락하며 인수가격을 경쟁적으로 높이던 MBK파트너스와 맥쿼리PE는 공동인수를 결정했다. 매입가격은 2조750억원. 시장에서 거래되던 가격 1조원의 두배를 줬다. “남한테 주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혼자 인수하긴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경쟁자끼리 손을 잡은 기형적 사례”(A 사모펀드 대표)다.
◆두배에 달한 경영권 프리미엄
씨앤앰 사례는 2005년 사모펀드 제도 도입후 걸음마 단계에 머물던 국내 사모펀드의 시행착오를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씨앤앰의 현재 가입자당 기업가치는 50만원을 밑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쟁업체면서 규모가 훨신 큰 CJ헬로비전의 가치가 50만원에 지나지 않아서다. 그러나 6년전 씨앤앰이 거래될때 산정한 가입자당 기업가치는 100만원에 달했다. 당시 장미빛으로 포장된 케이블TV산업 전망이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2009년부터 통신사들이 주도하는 인터넷TV(IPTV)가 확산되면서 케이블TV산업은 오히려 하향세를 보였다. 결국 MBK파트너스나 멕쿼리PE는 거품덩어리가 된 씨앤앰을 안고 전전긍긍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보고펀드의 애물단지가 된 LG실트론도 마찬가지다. 당시 보고펀드와 경쟁했던 한 사모펀드 운용사의 대표는 “당시엔 글로벌 장기호황 덕에 실탄이 풍부해 인수경쟁이 치열했다”며 “인수전에서 탈락한 뒤 많이 실망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6조원의 중고매물 대기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통상 8~12년에 이르는 펀드 약정 기간 내에서 투자한 돈을 회수해 국민연금 같은 펀드 투자자(LP)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매각 협상과 청산등에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통상 투자한 후 5년이 지나면 매각 절차에 착수한다. 현재 국내 M&A시장에 나와있는 사모펀드의 매물들은 대부분 1~2년이상 매물리스트에 올라있는 것들이다. 구입가격을 받을 수 없게 되면서 하나 둘 ‘중고 매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악성 매물들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사모펀드들의 연평균 신규자금 모집액(약정액)은 7조3000억원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투자 회수 금액은 연 평균 2조3000억원에 불과하다. 사모펀드에 투입되는 자금에 비해 자금을 회수하는 속도가 더디다는 의미다.
◆자금 회수 잇따라 실패, PEF 투자 위축 우려
투자금 회수 실패 사례가 늘어나면서 PEF업계에 대한 불신은 커지고 있다. 이선규 새마을금고중앙회 자금운용본부장(최고투자책임자)은 “글로벌 저금리 상황에서 사모펀드 시장은 커지고 있지만 국내에서 안심하고 돈을 맡길 운용사를 찾기가 사실 쉽지 않다”고 말했다.
매각 불발은 투자기업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사모펀드들이 출자자에게 돌려줄 돈을 매각이 아닌 투자회사에서 회수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위니아만도의 경우 외국계 사모펀드들이 유상감자, 배당, 차입매수(LBO, Leveraged Buy-Out) 등으로 돈을 빼내갔다. 회사 매출이 2000년 7750억원에서 2013년 4127억원으로, 영업이익은 811억원에서 168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사모펀드 투자가 위축되면서 산업 구조조정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 사모펀드의 한 관계자는 “ 매각이 장기화되면 장기투자보다는 구조조정을 통한 단기 실적 개선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져 기업의 지속성장 전략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
좌동욱/고경봉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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