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13일 콘클라베가 끝나고 “새 교황 이름이 프란치스코로 정해졌다”고 전해졌을 때 직감적으로 떠오른 이가 성 프란치스코(1182~1226)였다. 이탈리아 중부 내륙의 작은 도시 아시시에서 활동한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섬유무역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던 그는 또래 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음주가무를 즐겼던 ‘오렌지족’ 출신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신비로운 목소리가 잇달아 들려왔다. “네가 지금까지 사랑하고 즐기던 것들을 모두 버려라. 그러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의 기쁨과 즐거움을 알게 될 것이다.”
교황 방한 20일 앞으로
이게 무슨 뜻일까, 고민하며 말을 타고 가던 그에게 누추한 차림의 나병 환자가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손을 내밀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잽싸게 피했겠지만 그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나병환자에게 다가갔다. 썩어가는 손에 입을 맞추고 주머니를 뒤져 가진 돈을 모두 주었다. 이후 그는 가난한 이들과 평생을 함께하며 그들의 형제로 살았다. ‘프란치스코’라는 교황의 탄생은 ‘뭔가 달라지겠구나’ 하는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과연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직후부터 전 세계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소박함과 파격 행보로 연일 뉴스를 탔다. 무슬림 여성과 장애인들을 부활절 미사에 초대해 발을 씻겨주었다. 분쟁 지역인 중동을 방문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화해를 촉구했다. 지난 6월엔 이탈리아 마피아의 본거지를 찾아가 ‘파문(破門)’을 선언하는 용기도 선보였다. 말썽 많은 바티칸 은행을 비롯한 내부 개혁도 잇따랐다. 1400만명을 넘는 교황 트위터의 팔로어 숫자가 그의 인기를 가늠케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교황의 방한은 25년 만에 교황을 맞이하는 한국 천주교는 물론 한국 전체의 경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에 세계의 관심이 쏠려 있는 만큼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기회이기도 하다. 교황 방한을 국민적 축제로 만들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개혁정신과 방식을 읽어야
그러나 바티칸은 “요란한 행사보다 교황의 메시지에 주목해달라”고 한국 천주교에 주문했다. 교황 방한의 직접적인 목적은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및 순교자 124위 시복식 참석이다. 천주교는 사목적 방문이라고 성격을 규정하고 있지만 교황의 방한은 그런 의미를 넘어선다.
교황청 내부 사정에 밝은 신학자 김근수 씨는 지난주 출간한 책 《교황과 나》(메디치)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개혁가라고 규정했다. 교황청의 2000년 역사는 자기개혁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가톨릭은 욕심으로 교회가 혼탁해지고 신자들이 점점 교회를 멀리하는 시점에서 세 번째 ‘개혁 교황’으로 그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개혁 교황의 첫 번째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한 19세기의 레오 13세, 두 번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가톨릭의 현대적 이정표를 마련한 20세기의 요한 23세다.
교회를 향해 더 가난해지라고 요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우리가 읽어야 할 메시지는 그의 개혁 정신과 방식이다. 말로서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개혁하되 적을 만들지 않는 것, 욕심에 흔들리지 않고 본래 목적을 잃지 않는 것. 교황은 그런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서화동 문화부 차장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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