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잡은 해산물로 '싱싱한 바다'를 맛보다

입력 2014-07-26 18:00  

Luxury & Taste

주택가 인근 간판없는 집
여수·통영서 날마다 직배송
15가지 자연산으로 메뉴 구성



[ 유승호 기자 ]
지도에 나온 대로 ‘선릉로162길’ 표지판을 보고 50m쯤 걸어가 줄리아나 갤러리 앞을 지났는데도 찾는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쯤인데’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회색 담 사이로 나무 대문이 빼꼼히 열린 2층집이 눈에 들어왔다. 한 걸음 다가가서 보니 ‘元(원)’이라는 한자 아래 영어와 한글로 ‘스시모토’라고 적힌 작은 간판이 보였다. 그 간판도 원래는 없었는데 찾기 어렵다는 손님들이 많아 달아놓은 것이라고 한다.

서울 청담동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건너편 주택가에 있는 스시모토는 ‘스시의 으뜸’ ‘스시의 근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정통 일식당이다. 가정집 같은 분위기와 간판조차 신경 쓰지 않는 모습에서 오로지 음식 맛으로만 승부하겠다는 고집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대문에서 집 안으로 통하는 나무 계단과 10㎡ 남짓한 정원, 좁은 복도를 따라 이어진 다다미방. 19세기 말 일본 메이지시대 가옥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일식당에 자주 가본 사람이라면 스시모토의 구조가 특이하다고 생각할 만한 대목이 있다. 일식당엔 ‘카운터석’이라고도 하고 ‘다치’라고도 하는 자리가 있다. 주방장 바로 앞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자리다. 카운터석은 일반적으로 식당 중앙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있는데, 스시모토의 카운터석은 2층에 있다.

카운터석 손님이 다른 사람들 눈에 덜 띄도록 하려고 2층에 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박두우 스시모토 기획실장은 “단골 중에 대기업 오너와 유명 연예인이 많다”며 “이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시모토의 최고급 메뉴는 ‘특선 사시미 오마카세’다. ‘오마카세’는 일본어로 맡긴다는 뜻이다. 무슨 요리라고 미리 정한 것 없이 셰프가 그날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재료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요리를 선보이는 메뉴다.

일식 코스 요리는 일정한 순서가 있다. 양식의 애피타이저에 해당하는 고바치가 제일 먼저 나오고 사시미(회), 야키모노(구이), 무시모노(찜), 스이모노(국물), 스시(초밥)로 이어진다. 차가운 것에서 뜨거운 것으로, 담백한 음식에서 자극적인 음식으로 가는 규칙이 있다. 고바치로는 가지에 얹은 전복찜과 삼마, 해삼젓갈이 나왔다. 여름철이라 고바치도 보양식인 전복과 해삼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사시미는 ‘특선 사시미’와 ‘사시미 모리아와세’로 나뉘어 나왔다. 참치 농어 등으로 구성된 특선 사시미는 음식도 음식이지만 얼음으로 만든 그릇이 인상적이다. 모리아와세는 일종의 모둠회다. 도미 고등어 새우 가리비 등이 푸짐하게 올라왔다. 스시모토는 양식이 아닌 자연산 생선으로만 사시미를 만든다. 부산 통영 여수 동해 등지에서 매일 새벽 4~5시 생선을 직배송받는다. 일요일엔 영업을 하지 않는다. 산지 도매시장이 열리지 않아 당일 받은 생선을 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눈볼대(금태)를 미소(일본 된장)에 절였다가 구운 금태 미소야키, 메추리알 반숙을 곁들인 한우 살치살 스키야키, 소금으로 간을 한 도미머리찜이 이어서 나왔다. 스시까지 더하면 15가지 종류의 생선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이윽고 스시가 나올 차례. 한 움큼 밥알 위에 전복 고등어 눈볼대 보리새우 갯장어가 차례로 얹혔다. 날것이 아니라 찐 전복, 구운 눈볼대 등을 사용해 굳이 간장에 찍어먹지 않아도 맛이 심심하지 않았다.

스시모토는 카운터석 6석을 포함해 총 36석이 있다. 카운터석 외에 방이 7개 있다. 그중 5개는 다다미방이고, 2개는 테이블이 있는 방이다. 10명이 들어가는 테이블룸 한 곳 외에는 모두 2~4명이 앉을 수 있는 작은 방들이다. 홀 좌석은 없다.

고급 일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3만2000원짜리 런치박스도 운영하고 있다. 런치박스는 청담동 일대 20~30대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한다.

정수용 셰프 "재료 좋으면 양념 필요없어 소금 간으로 충분"

“일식당에 오면 꼭 카운터석을 이용해 보세요. 취향에 맞게 주문할 수 있고 보다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요.”

정수용 스시모토 셰프(36·사진)는 일식을 좀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주방 바로 앞에 있는 카운터석은 일식당만의 독특한 공간이다.

카운터석은 요리사와 손님이 대화를 나누며 교감하는 공간이다. 정 셰프는 “손님과 요리에 대한 것부터 시작해 직장에서 겪는 고충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고 했다. 그의 설명대로 음식을 보다 신선한 상태로 먹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음식을 만들어서 방이나 테이블까지 가져가는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요리를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카운터석만의 매력이다. 정 셰프는 스시 한 개를 만들고 나면 오른손을 손씻는 물에 살짝 담갔다가 오른손가락으로 왼손 바닥을 때리는 습관이 있다. ‘찰싹’ 하는 소리가 스시를 집어먹어 보라는 신호처럼 들린다.

정 셰프는 두 달에 한 번씩은 통영 여수 등 주요 수산물 산지에 다녀온다. 좋은 재료가 있는지 확인하고 산지 도매상과 직거래 계약을 맺기 위해서다. 정 셰프는 “눈볼대(금태) 등 일부 생선은 산지에서 구입하지 않으면 사기가 어렵다”며 “보다 다양하고 좋은 재료를 확보하려면 산지에 직접 가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료가 신선하면 양념을 많이 쓰지 않고도 좋은 맛을 낼 수 있다”며 “스시모토의 음식은 대부분 간장 없이 소금으로만 간을 맞춘다”고 말했다.

정 셰프는 경력 10년의 비교적 젊은 요리사다. 10여년 전 호텔 일식당에서 서빙 담당 직원으로 일하다 일식 요리가 너무 예뻐 보여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한 요리를 많이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글=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사진=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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