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매칭펀드 악용…원금보장 등 불가능
브로커들 엔젤투자 실적도 거의 없어
[ 오형주 기자 ]
“개인투자조합에 출자하면 소득공제 혜택만으로 연간수익률 19% 달성이 가능합니다.”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강남의 A아파트단지 내 연회장. 한 투자자문사 관계자가 주민들을 상대로 개인투자조합 엔젤투자 예찬론을 폈다. 설명회에 찾아온 노년층 입주민 수십명은 “나는 임대사업자인데,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나”는 등의 질문을 쏟아내며 큰 관심을 보였다. 이들 손엔 ‘중소기업청 등록 개인투자조합 지원센터’ 명의로 된 설명회 홍보 전단지가 들려 있었다. 전단지엔 ‘파격적인 세제혜택(출자금액의 50% 소득공제)과 안정적인 투자(원금 보존)’를 동시에 추구한다고 적혀 있었다.
정부가 엔젤투자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을 확대한 뒤 강남·목동 등 고급 아파트단지 밀집지역에서 엔젤투자자 모집 설명회가 성행하고 있다. 그런데 엔젤투자자를 모집하면서 원금 보장과 예상 수익률 등을 제시하는 것은 유사수신 행위로 불법이다.
벤처투자 업계에 따르면 설명회를 주관하는 투자자문사와 소속 브로커들은 과거 엔젤투자 실적(트랙레코드)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집방식·보수 등 불법투성이
최근 들어 엔젤투자 불법 설명회가 성행하는 배경에는 정부의 벤처투자 활성화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정부는 4월1일부터 5000만원 이하 엔젤투자금액에 대한 소득공제율을 종전 30%에서 50%로 확대했다. 창업 초기 기업에 대한 개인 투자에 인센티브를 줘 벤처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과세표준 소득이 8800만~1억5000만원(소득세율 38%)인 개인이 소득공제율 50%를 적용받는 한도인 5000만원을 투자하면 연간 962만원의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연간수익률로 환산하면 19%에 달한다.
소득공제 확대로 엔젤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일부 투자자문사들은 “연간 수익률 19% 달성이 가능해졌다”고 홍보하며 발 빠르게 개인투자조합을 통한 투자자 모집에 나서고 있다.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특법) 및 시행령에 따르면 개인투자조합은 49인 이하 개인들의 출자로 결성된다. 일종의 ‘사모펀드 계’라고 볼 수 있다. 개인투자조합은 출자금 총액 1억원 이상, 업무집행조합원(GP)의 출자지분이 출자금 총액의 5% 이상 등의 요건을 갖춰 중소기업청에 등록해야 벤처 투자가 가능하다. 설명회를 연 브로커들은 자신들이 GP 자격으로 조합 운영 전반을 주도할 것으로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광고전단 등을 통해 원금 보장과 수익률 등을 언급하며 조합원을 모집하는 행위는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위배된다. 벤특법에 따르면 중기청은 유사수신행위규제법을 위반해 조합원을 모집한 개인투자조합의 등록을 취소할 수 있다. 중소기업청 벤처투자과 관계자는 “중기청에는 (안내문에 명시된) ‘개인투자조합지원센터’로 등록된 곳이 없다”며 “유사수신행위는 불법인 만큼 시정 조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엔젤매칭펀드 악용
브로커들은 엔젤투자매칭펀드를 활용하면 투자 원금을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다고 홍보하며 투자자를 끌어 들인다. 엔젤투자매칭펀드는 벤처기업 지원과 창업촉진을 목적으로 엔젤투자를 받은 기업에 정부가 같은 금액을 함께 투자하는 제도다. 정부가 출자한 한국모태펀드의 수익금이 재원이다. 매칭펀드 운용은 중기청이 설립한 한국벤처투자(KVIC)가 맡고 있다. 올해 운용 규모는 1400억원이다.
“벤처기업이 정책자금을 지원받도록 컨설팅을 해왔다”는 브로커들은 벤처기업에 매칭투자를 받게 해주는 대가로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금액만 실제 사업비로 쓰고 우리 투자금은 안전자산으로 묶어둔다”는 내용으로 이면약정을 맺으면 된다고 주장했다. 보통주 대신 전환사채와 상환우선전환사채에 투자하면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브로커들의 계획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뿐더러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서경훈 엔젤투자지원센터 팀장은 “엔젤투자금을 전환사채와 상환전환우선주 위주로 운용하면 매칭펀드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보통주 위주로 엔젤 투자를 받은 기업만 매칭펀드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 팀장은 “전환사채 투자는 소득공제 대상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종건 법무법인 이후 변호사는 “만약 매칭펀드를 받더라도 기업과 이면약정을 통해 투자금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자산을 담보로 잡으면 불법”이라며 “설사 위법하지 않다고 해도 편법으로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국가 정책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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