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금 운용사 선정때 유리
도입 안하면 경쟁 탈락 '괴담'
年5억 수수료 내는 과잉투자지만
대형사 잇따라 도입 검토
[ 박동휘 기자 ] 한국투자신탁운용은 2012년 연기금투자풀(38개 정부기금의 공동투자금) 주간운용사 선정에 참여하면서 미국 MSCI 자산운용시스템인 ‘바라(Barra)’를 약 20억원(4년치 사용 대가)에 도입했다. 정보기술(IT) 시스템에 대한 선(先)투자라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였다. 결국 주간사로 선정돼 삼성자산운용이 독점하던 정부기금 운용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손에 쥐는 돈은 별로 없다. 1조원(지난해 기준)을 위탁받아 수수료로 6bp(0.06%), 즉 6억원을 받아봐야 이 중 상당액을 MSCI에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증권·자산운용업계가 ‘바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바라’를 도입한 곳은 정부기금 위탁운용사로 선정되고, 그렇지 않은 곳은 탈락한다는 ‘괴담’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기금을 위임받아 하위 자산운용사에 나눠주는 역할을 하는 주간운용사 4곳 모두 ‘바라’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자체 시스템을 쓰던 삼성자산운용도 작년 말 ‘바라’를 도입했다. ‘맘스(Manager of Managers)’라는 자체 운용시스템을 개발, 2006년부터 대과 없이 연기금투자풀을 굴려왔던 삼성이기에 ‘바라’를 왜 도입했는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삼성운용은 공식적으로 “맘스가 자동차라면 바라는 고성능 엔진”이라며 “맘스와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심사위원들이 맘스를 삼성만 사용하는 검증받지 않은 시스템이라고 지적할 가능성을 경계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바라’ 도입과 연관이 있는지 확인할 순 없지만 KB자산운용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과의 3파전에서 삼성운용은 주간운용사로 선정됐다.
‘바라’ 도입이 주간운용사 선정의 필수 요건이라는 업계의 ‘심증’은 올 들어 더욱 굳어지고 있다. 지난 4월 국민주택기금 주간운용사 두 곳을 선정하는 건이 그랬다. 증권사 몫을 놓고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삼성증권이 경쟁한 끝에 ‘바라’를 도입한 한국투자증권이 승리했다. 자산운용사 몫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가져갔다. 미래운용 측은 2012년 연기금투자풀 주간운용사 경쟁에서 ‘바라’를 도입하지 않아 한투운용에 고배를 마셨다고 판단, 이번엔 입찰 직전에 MSCI와 4년 계약을 맺었다.
증권·운용사들은 고민에 휩싸였다. 하반기에 14조원 규모의 고용노동부 기금(산업재해·고용보험) 주간운용사 선정이 예정돼 있어서다. 증권사와 운용사 1곳씩 정해 7조원씩 나눠줄 가능성이 높다. 연기금투자풀과 국민주택기금 때 고배를 마셨던 삼성증권, 현대증권, KB운용, 신한BNP파리바운용 등 대형사들은 ‘바라’ 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증권·자산운용사의 과잉 경쟁에 ‘미국 금융이 표준’이라는 심리가 더해지며 ‘바라’ 문제가 불거졌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과잉투자를 우려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가기금은 국내주식에 5% 내외, 나머지는 국내채권에 투자하도록 자금을 위탁한다”며 “‘바라’는 해외 주식형펀드에 최적화된 성과평가 및 위험관리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토종’ 금융 IT 시스템 개발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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