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종 기자 ] 며칠 전 군복무 중인 대학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국방부가 내놓은 ‘군파라치’ 제도에 대해 한숨을 내쉬었다. 군파라치 제도는 윤 일병 사망 사건 이후 국방부가 내놓은 대책 중 하나다. 병영 내 구타 등을 고발하는 병사에게 휴가 등 포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동료를 구하거나 악습을 고치겠다는 내부 고발자의 순수한 의도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게 문제다. 후배는 “군파라치 제도 하에서 악습 고발은 포상에 눈이 먼 행동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다”며 “내부 고발자를 대상으로 행해졌던 ‘기수 열외’는 더욱 명분을 얻을 것이고, 신고는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사병 복무를 해보지 않아 병영 내 악습 구조를 알지 못하는 지휘관들이 모여 내놓은 대책이다 보니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병사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야 하는 이유다.
기자가 공군 헌병으로 복무할 때 시행됐던 제도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 병사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명예헌병 제도는 일종의 ‘인기투표’였다. 매달 모든 소대원에게 세 표의 권한을 주고 무기명으로 소대원 중 가장 명예로운 헌병을 뽑았다. 백미는 투명하게 공개되는 전 부대원 득표 수와 순위였다. 나쁜 사람을 징벌하는 것이 아닌 좋은 사람을 가려내는 제도였다.
득표 1위로 명예헌병에 선정된 병사에게는 따로 포상이 없다. 부대원들의 인정이라는 ‘명예’ 그 자체가 상이다. 휴가 등 포상이 개입하면 순위 조작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제도 시행 후 가혹행위는 눈에 띄게 줄었다. 후임병을 괴롭히던 선임병이 밑바닥에 있는 자신의 순위를 확인한 뒤다.
사회학자 쿨리는 ‘거울자아 이론’에서 “인간은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자아를 형성한다”고 했다. 가해 병사는 구타·가혹행위를 부대 내 질서를 위해 불가피한 것이며 누군가는 자신을 인정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투표를 통해 자신의 행동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을 때 행동을 바꾼다. 아래로부터의 견제장치가 없다면 상명하복의 권력은 폭주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생리를 가장 잘 아는 이는 병사들이다.
박병종 IT과학부 기자 dda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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