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에 밀리던 레고…블록에 이야기 입혀 '회생'

입력 2014-08-29 00:00  

Best Practice - 덴마크 완구업체 레고

디지털시대 '퇴물' 취급받아 1998~2004년 적자 수렁
매각설 나돌 정도로 위기
가족경영 고집 꺾고 맥킨지 출신 CEO로 영입
레고 무비…키마의 전설…닌자고 등 '스토리 블록'
어른 눈길 먼저 잡아 대히트
2009~2013년 매출 2배 영업이익 4배로 껑충 뛰어

1949년 지금 형태의 플라스틱 레고 개발
완구업체 매출 기준 세계 2위
레고가 연간 생산하는 블록의 양, 550억 개



[ 김순신 기자 ]

최근 전 세계 완구업계는 위기에 직면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모들이 아이들의 장난감 소비를 줄였고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아이들이 모바일 게임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덴마크 완구업체 레고는 암울한 시장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독보적인 성장을 보여왔다. 2009~2013년 레고의 매출은 2배, 영업이익은 4배 가까이 늘었다.

덴마크어로 ‘잘 논다’는 뜻인 레고의 괄목할 만한 성장 뒤에는 부도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혁신과 영화 등 새로운 먹거리 찾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경영 전략이 있었다.

위기를 혁신의 기회로

목수였던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은 1932년 덴마크 빌룬트시(市)의 작은 작업실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유럽을 덮친 대공황으로 일감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손재주를 살려 자동차·요요 등 나무 장난감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82년 레고의 역사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장난감은 잘 팔려 나갔고 사업성에 주목한 그는 2년 뒤 장난감 전문기업 레고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완구사업에 뛰어들었다.

1942년 그는 위기를 맞았다. 장난감을 생산하던 빌룬트 공장에 불이 난 것. 장난감 설계 도면과 기계 등 모든 것이 불탔다. 그는 위기에 좌절하지 않고 혁신의 기회로 삼기로 한다. 그가 주목한 것은 플라스틱. 무겁고 잘 부서지는 나무 장난감의 단점 해결에 나선 것이다. 5년 동안의 연구 끝에 1947년 레고의 첫 플라스틱 장난감이 출시됐다.

그는 아이들이 같은 장난감에 금방 싫증 내는 것에 주목했다. 그는 한 장난감이 다른 장난감으로 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여러 모양으로 바꿀 수 있는 블록 장난감 개발에 착수했다. 1949년 블록 윗부분에 요철을 만들고 아랫부분은 빈 공간을 둬 서로 결합하는 장난감이 개발됐고, 이는 블록을 활용해 소비자가 원하는 구조를 스스로 만드는 레고만의 특징이 됐다.

회사를 물려받은 그의 아들 고트프레드는 호환성을 높이기 위해 블록 크기를 표준화하기로 했다. 이후 레고 블록들은 다양하지만 보편적인 규칙이 있다. 디자인과 상품명이 다르더라도 1958년 이후 제작된 레고 블록들은 자유롭게 호환할 수 있다. 아이들이 직접 장난감을 만드는 레고 제품이 창의성 계발에 도움이 된다는 입소문이 돌자 1970~80년대 레고는 전성기를 맞았다.

외부인재 영입으로 위기 극복

레고가 유럽을 넘어 미국 등에서 인기를 끌자 사업은 창사 이래 66년 연속 흑자를 올릴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컴퓨터의 등장으로 인한 시대 변화는 레고에 위기로 다가왔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레고 블록을 갖고 놀던 아이들의 흥미는 컴퓨터 게임으로 옮겨갔다. 아날로그 장난감인 레고는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고 매출은 급감했다. 급기야 1998년 첫 적자를 기록한 뒤 이어진 적자 행진은 멈출 줄 몰랐다. 2004년에는 18억덴마크크로네(약 3230억원) 적자를 봤다.

출산율 저하와 경쟁업체의 등장도 레고를 위협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 레고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 장난감으로 인기를 끌며 탄탄하게 성장했다. 하지만 주요 시장이었던 유럽과 미국 출산율이 떨어지자 아이들 장난감인 레고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더불어 중국 등에서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해 레고 블록을 모방한 모조품을 쏟아냈다. 경쟁력을 잃어가던 레고는 2000년대 초반 매각설이 나돌 정도로 위기에 빠졌다.

가족경영을 고집해 온 크리스티얀센 가문은 최악의 상황에서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회사를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기로 한 것.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인 요르겐 빈 크누드스톱이 위기를 진화할 소방수로 선발됐다. 크누드스톱은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뒤 과감한 개혁을 통해 레고를 바꿔나가기 시작한다.

블록에 이야기를 입혀라

크누드스톱 CEO는 핵심 사업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3억달러에 달하던 적자를 줄이려고 수익이 저조했던 테마파크 ‘레고랜드’를 미국 사모펀드 블랙스톤에 매각했고 상품 수를 줄여 핵심 상품 생산에 주력했다.

그는 레고의 회생을 위해 어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줄어드는 아이들의 수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레고는 제품에 이야기를 입히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3주 연속 1위를 차지한 영화 ‘레고 무비’다.

스토리를 접하고 레고를 조립하면서 고객들은 스스로 이야기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미국에서 인기를 끈 ‘키마의 전설’이나 지난해 어린이날 국내에서 품귀현상을 빚었던 ‘닌자고’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매즈 니퍼 레고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디지털과 오프라인의 경험을 연결한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크누드스톱이 CEO에 오른 뒤 지난 10년간 레고 매출은 4배가 됐고 적자에 허덕이던 영업이익은 83억3600만덴마크크로네(약 1조5000억원)로 치솟았다. 2012년에는 트랜스포머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의 해즈브로를 제치고 바비인형을 만드는 마텔에 이은 세계 2위(매출기준) 완구 업체로 복귀했다.

제조업의 전통적 가치에 집중한 것도 성공 요인이다. 2009년 모바일 블록 쌓기 게임인 마인크래프트가 등장하자 레고도 모바일 게임인 ‘레고유니버스’를 내놨다. 하지만 곧 접었다. 니퍼 CMO는 “베타 버전을 내놓고 끊임없이 수정하는 모바일 게임 형태는 우리의 DNA와 맞지 않았다”며 “우리는 소비자에게 완벽한 제품을 판매하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레고는 모바일 붐에 휩쓸리는 대신 생산 공장에 투자하기로 했다. 생산 단가를 낮추겠다는 복안이었다. 레고는 지난해에만 4억8900만달러를 투자해 멕시코, 체코 공장을 확장하고 헝가리와 중국에 새 공장을 지었다. 그 결과 현재 초당 2000개, 연 550억개의 블록을 만들 수 있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레고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플라스틱 가격보다도 싸게 블록을 만든다”고 전했다.

하지만 레고가 신기술을 멀리하는 것은 아니다. 크누드스톱 CEO는 “고객들이 3차원(3D) 프린터로 레고를 자체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완구업체는 3D 프린터를 자신의 제품을 불법 복제할 수 있는 ‘위기’로 인식했지만, 레고는 맞춤형 레고를 갖고 싶어하는 성인 시장을 공략할 기회로 보고 있는 것이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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