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태 정치부 기자, 국회반장) 정치가 실종된 한달여간의 ‘세월호 특별법 정국’은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치욕사(恥辱史)’로 기억될 것이다.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겸 원내대표는 자신이 서명한 여야합의안을 두 번이나 걷어찬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세월호 유족과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간 협상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봐야 하는 신세가 됐고, 대외 강경투쟁과 국회파행에 따른 여론비난은 몽땅 뒤집어 써야만 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말께 40%에 육박하던 당 지지율이 16.6%(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조사)로 내리꽂힌 것은 새정치연합과 박 위원장이 처한 엄연한 혐실이다.
최근 좌초 위기에 놓인 새정치연합 내 초선의원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고 있다. 전남 장흥 등을 지역구로 한 황주홍 의원이다. 황 의원은 당 의원총회 때마다 강건파에 맞서 소신발언을 했지만 주류 주장에 묻히곤 했다. 동료 의원들은 “입바른 소리지만 정세판단을 못한다"고 평했고, 혹자는 우스갯소리로 “새누리당의 X맨"이라고까지 했다.
이런 황 의원이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지난 27일 당의 장외강경투쟁 방침에 맞서 반대성명서를 발표하면서다. 성명서에는 당내 온건파로 분류되는 15명 의원이 합류해 힘을 보탰다. 황 의원이 이들 의원에게 일일이 전화해 협조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명에 동참한 의원 중에는 김동철 박주선 변재일 장병완 주승용 조경태 등 중진의원들이 다수 포함됐다. 당 지도부는 아직 강경투쟁 방침을 거두지 않고 있지만, 국회를 볼모로 한 장외강경투쟁의 결기는 상당부분 꺾인 것으로 관측된다. 29일 심야까지 진행된 새정치연합 의원총회에서는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회의장을 거점으로 한 철야농성을 중단키로 결정했다.
당의 투쟁방향을 바꾼데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황 의원은 이날 심야 의원총회에서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우리 당의 허위의식"이란 주제로 고언을 쏟아냈다.
그는 “야당이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틀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에 입성한 후 그가 겪은 민주당 의원들은 독특한 자의식에 포획돼 있었다고 평가했다.
황 의원은 “과거 권위주의 독재정권을 타도했다는 자부심인 것 같은데, 국민들이 이러한 업적과 전공을 기억해서 무조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황 의원은 “이 자부심은 절반 정도만 맞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는 “과거 업적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에게 민주화의 성과가 있었다면, 저들(새누리당)에게는 산업화의 성과가 있다”며 “국민들 눈에는 이 두 성과가 다 훌륭하다”고 덧붙였다.
1987년 이전에 이룩한 민주화의 업적이 2014년에도 여전히 후광을 발휘하고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을 현재 야당의원들의 가장 큰 착각이라고 몰아부쳤다. 29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대 새정치연합의 지지율( 47%대 16%) 차이가 야당이 처한 현실을 대변해준다고 설명했다.
황 의원은 세월호특별법 협상안을 무산시킨 점도 문제 삼았다. 그는 “국민들이 절대 지지하는 여당 대표와 우리가 뽑은 대표가 합의한 협상안을 형식논리상 거부하고 반발할 논리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황 의원은 정치에서 여야는 상호 대체재(代替財)일 뿐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국민들이 김대중·노무현도 믿고 맡긴 것처럼, 이명박·박근혜도 믿고 맡긴 것”이라며 “국민들이 새누리당에게 대한민국을 맡긴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는 것도, 나라를 팔아먹어버리는 것도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슬픈 일이지만 국민들은 오히려 야당에게 맡기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불안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황의원은 차기 대선 승리를 위해 야당의 인식틀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의 정책방향으로 가더라도 이 나라는 거뜬하다는 인식, 오히려 현 단계의 국민 여론은 새누리당의 정책방향을 더 믿음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인식, 저들은 원수가 아니라 우리의 맞수라는 인식 등을 인식전환의 3가지 범주로 꼽았다.
그는 ”이런 인식전환을 통해서만 야당을 부드럽고 친절하게 변화시키고,진정으로 민생길목을 지키게 함으로써 대선승리를 이끌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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