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북한 추석엔 '세 가지'가 없다...'살까기'도 안한다

입력 2014-09-01 18:24  


(전예진 정치부 기자) 북한의 추석에는 세 가지가 없다. 민족 대이동, 택배 대란, 명절 스트레스다.

추석 연휴가 보통 3~4일인 우리와 달리 북한은 고작 하루, 길어야 이틀 밖에 쉬지 못한다. 휴일이 짧은 데다 도로, 철로가 제대로 닦여 있지 않아 먼 친척을 찾아가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다. 자동차 보급률도 낮아 귀성 차량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교통체증도 보기 드물다.

한 탈북자는 “자동차, 기차가 다니지 않는 곳이 많아 멀리 사는 친지를 방문하려면 사나흘이 걸린다. 가까운 곳에 모여사는 친척들끼리 모여 명절을 보낸다”고 했다.

북한의 추석연휴가 짧은 이유는 사회주의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전통 명절을 축소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1967년 5월 설과 추석을 조상 숭배와 민간 풍속을 계승하는 봉건 잔재로 여기고 폐지해버리기도 했다. 20년 뒤인 1988년에서야 다시 공휴일로 지정됐지만 여전히 무늬만 ‘명절’에 불과하다.

추석명절 선물세트는 커녕 특별 배식도 나오지 않는다.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4월15일)과 김정일의 광명절(2월16일)에만 제공된다고 한다. 인민들의 충성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다. 이렇다 보니 북한에서는 설과 추석 대신 태양절과 광명절이 최대 명절이 됐다.

그래도 조상의 무덤을 찾아 ‘산소 보기’(성묘)하고 송편을 빚고 차례를 지내는 모습은 똑같다. 무덤 앞에서 술을 올리고, 절을 한 다음 차례상에 올린 음식을 같이 나눠먹는다. 경제난으로 잔치 분위기는 제대로 내지 못한다.

동쪽엔 붉은 과일, 서쪽엔 하얀 과일을 놓는 ‘홍동백서’와 같은 제사상 법도는 없어진지 오래다. 고인이 생전에 좋아한 음식을 가운데 놓고 성의껏 구한 음식을 올려놓으면 그만이다. 평범한 가정에서는 그동안 한줌씩 모은 쌀로 떡을 빚고, 제주껏 감춰뒀던 해산물과 흠집없는 제철과일을 올려놓는다.

그보다 사정이 좋지 않은 집은 작년에 제사상에 올렸던 술을 ‘재탕’해서 쓰기도 한다. 부모님 무덤 앞에 두부 한 모, 술 한 병으로 조촐하게 제사상을 차려놓고 통곡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하니 북한 사람들에게 추석은 즐겁기만한 날은 아니다.

추석 하면 ‘한가위 음식’을 빼놓을 수 없듯 북한에서도 추석 만큼은 ‘배부를 수 있는 날’이다. 먹을 양식을 비축해서라도 이날은 풍요로움을 즐긴다. ‘기름 냄새를 풍겨야 한다’며 전도 부치고 튀김도 만든다. 기름진 음식을 갑작스레 많이 먹다 보니 체하는 사람도 많다.

남쪽에서 명절 후유증으로 ‘살까기(다이어트)’를 한다는데, 북에서는 소화제가 필수라는 게 탈북자의 전언이다.

북한 당국이 명절 때 그나마 베푸는 시혜(?)는 ‘전기’다. 추석 때는 하루 종일 TV를 방영해준다. 재미는 없지만 나름대로 추석특선영화라고 할 수 있는 사상 영화를 재방송한다. 대표적인게 북한판 ‘사랑과 전쟁’이라 할 수 있는 ‘우리집 문제’ 시리즈다. 집안에 불화가 발생했을 때 인민 반장이 출동해 해결하고 수령님 사상으로 화합하는 내용이다.

북한 주부들의 소원은 ‘명절 스트레스’를 받아보는 것이라고 한다. 북한 남자들이 일을 많이 도와줘서 그런 게 아니다. 북한도 남녀평등사상이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아직 가부장 문화가 남아있어 팔을 걷어부치고 요리나 설거지를 도와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만들 음식이 차고 넘칠 정도로 풍족해서 일거리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제사상에 무엇 하나라도 더 놓고 싶고, 가족들에게 맛있는 것을 더 먹이고 싶어서 마음이 힘든 게 스트레스라면 스트레스다. 올해는 북한의 경제 사정이 그리 나쁘진 않다는데 이번 추석은 달랐으면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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