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현대차 노사 죽어야 산다

입력 2014-09-03 20:37   수정 2014-09-04 04:56

극렬 정치파업 상처만 남겨
파업 속 환골탈태 계기 찾아야

박수진 산업부 차장 psj@hankyung.com



현대자동차 임금협상 결렬 소식은 역설적으로 ‘희망적’이다. 지난 2일 밤 협상이 결렬되면서 추석 전 협상 타결은 어려울 것 같다.

“도대체 뭐가 희망적이냐”는 질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그냥 덮고 적당히 타협하는 것보다 진통의 과정이 있더라도 원칙과 질서를 세워가는 게 더 중요하다. 그래야 더 이상 습관성 파업이 발을 못 붙이게 된다.

사실 현대차 파업은 1987년 노조 설립 이후 연례행사다. 27년 동안 5년을 빼고 거르지 않고 파업했다. 현대차에 따르면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은 1987년부터 지난해까지 120만8442대, 액수로는 14조2258억원에 이른다.계열사인 기아차까지 합하면 159만7217대, 20조1821억원어치다. 현대차 울산공장을 한 해 동안 쉬지 않고 돌려야 생산할 수 있는 물량을 파업으로 날린 것이다. 5300여개 1·2차 협력사들이 입은 피해까지 합하면 액수를 추산하기도 힘들다.

그 결과는 냉엄하다. 공장 신증설 물량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국내 생산시설은 1995년 전주공장 준공이 마지막이다. 이후 터키 인도 중국 등 해외 7개국에 잇따라 공장을 세웠다. 글로벌 전략의 일환이라지만 극렬한 파업이 원인이 됐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민심도 돌아섰다. 현대·기아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계속 떨어지고 있다. 외국산 자동차의 선전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허구한 날 파업만 하는 회사 차를 왜 사주냐”며 등을 돌리는 이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일이 이렇게 된 데는 노사 양측에 문제가 있다. 현대차 노조원은 4만5000명이다. 상위 단체인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소속사업장 중 가장 규모가 큰 핵심 사업장이다. 현대차 임단협은 상징성을 갖는다. 임단협 시즌만 되면 선봉에서 극렬 투쟁을 벌인다. 반대를 위한 반대, 투쟁을 위한 투쟁을 외치는 정치 파업이 되풀이된다.

이를 묵인해 온 사측에도 잘못이 없지 않다. 2000년 이후 급속히 늘어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물량 대기에 바빴다. 파업만 하면 노조 비위를 맞춰 생산 재개에 나서기 급급했다. 습관적 정치파업을 조장한 셈이다.

아직 희망은 있다. 노조가 변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3년(2009~2011년) 무파업을 이끈 이경훈 씨를 지난해 다시 위원장으로 뽑았다. 정치투쟁보다는 타협과 실리를 원한다는 메시지다.

사측도 변하고 있다. 원칙 대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해 파업기간 동안 폭력 등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하지 않고 진행하고 있다. 11년을 끌어 온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스스로 해결방안을 냈다. 사회적 인식을 감안해 대응했다.

현대차는 지금 두 갈래 길 앞에 서 있다. 철 지난 파업투쟁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계속 깍아먹을지, 아니면 노사문화를 바꿔 글로벌 1위의 꿈을 꿀지 결정해야 할 때다. 후자가 정답이라면 노사 모두 환골탈태를 각오해야 한다. 새로운 비전을 공유하고 노사가 바뀌지 않으면 1등은 불가능하다. 설사 파업이 벌어지더라도 고통 속에서 불가능한 꿈의 싹을 찾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박수진 산업부 차장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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