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神話와 熱病의 '21세기 자본'

입력 2014-09-11 20:58   수정 2014-09-12 04:56

평등사회 구현 내세운 약탈적 課稅
기업가 정신이 일군 富 파괴 행위
경쟁·시장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야심작 《21세기 자본》의 대중적 인기가 프랑스와 미국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미국에서는 절판될 정도의 인기를 누렸지만 정작 프랑스에서는 냉담했다고 한다. 같은 책이라도 던지는 문제의식은 달리 해석된다. 인간의 성정은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돼 있다.

우리 사회에서 《21세기 자본》에 대한 반응은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부(富)의 집중화와 세습화’에 대한 피케티의 신랄한 비판을 접한 대중의 열광이 그 증좌다. 그리고 피케티의 논지는 매우 직관적이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항상 크기 때문에 불평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부의 평등 분배가 요원하다면 체제 유지 차원에서 고소득자와 고액 자산가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논지는 우리의 여론 동향과 맞아떨어질 공산이 크다. 부와 소득의 불평등 심화가 구조적이기 때문에 정치·사회적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고가 일반에 공유되면, 반응은 ‘열병(熱病)’으로 변질되고 사회는 이내 균형을 잃게 된다.

불평등에 관한 300년에 걸친 문명사적 조망은 역설적으로 피케티를 도그마에 빠지게 한 듯싶다. 그는 자본 축적을 ‘운동법칙’으로 보고 불평등 심화를 ‘필연’으로 인식했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다양한 비판에 처해 있다. 피케티의 이론체계에서 ‘자본은 스스로 증식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즉 자본스톡이 주어지면 자본소득은 ‘저절로’ 파생된다. 하지만 실제 인과관계는 반대다. 자본스톡이 소득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소득이 창출될 때 비로소 그 ‘소득의 원천’으로서 자본이 의미를 갖게 된다. 그는 ‘죽은 자본에 혼을 불어넣는 기업가정신’을 간과했다.

또한 자본과 부를 등치시킴으로써 범주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는 “자본은 은행예금 실물자산 금융자산 등 다양한 형태를 띠며, 모든 자본자산은 투자수익률을 가진다”고 기술하고 있다. ‘생산요소’로서의 자본을 일컫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론체계에서 자본은 노동을 제외한 존재하는 모든 이질적 자산을 합한 민간보유 순자산으로 정의된다. 이처럼 자본의 크기와 그 축적 속도가 과장됨으로써, 그 연결고리로서 소득불평등 심화도 과장될 개연성이 높다.

그는 불평등 심화의 증거로 ‘상위 1%’ ‘상위 10%’ 등의 소득점유율을 자주 인용한다. 그러나 소득 계층의 구성은 늘 바뀐다. 상위 10% 소득계층을 보면 생애소득에서 소득이 가장 높은 연령의 가구가 포함될 개연성이 높다. 이제 노동시장에 들어온 청년세대와 은퇴세대의 소득이 낮은 것은 당연하다. 설명 가능한 차이를 불평등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또한 사회 구성원의 소득분포 자체가 정책목표일 수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정한 불평등’을 사전에 상정할 수 있어야 한다. 정책적 관심을 빈곤문제로 국한하면 정책 접근은 그만큼 명료하고 용이해진다.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잘 알려진 대안이다.

피케티는 논의를 자본축적에 한정함으로써 정책대안을 스스로 제약하고 있다. 예컨대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불황, 그리고 높은 조세부과가 불평등을 완화했다”는 식의 해석이 그 전형이다. 이를 연장하면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불황과 전쟁과 약탈적 세금이 필요하다는 주장밖에 나오지 않는다. 피케티가 제안한 ‘80%’ 최고소득세율로의 소득과세와 ‘10%’ 자본과세는 그 같은 정책 사고에서 연유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조치는 부를 파괴한다.

재산 소유자들이 유한계급은 아니다. 그들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봉사를 수행할 때 그들의 지위를 누릴 수 있다. 만약 소유한 부를 현명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퇴출된다. 경쟁에 의해 그 위치가 변하게 된다. 시장경제는 모두의 번영을 가져다주는 질서다. ‘노동계급의 희생을 전제로 한 자본계급의 번영’을 중과세를 통해 막아야 한다고 여긴다면 《21세기 자본》의 ‘신화(神話)’에 빠진 것이다. 합리적 성찰로 ‘신화와 열병’을 극복해야 한다. 숙려사회는 아직도 요원하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객원논설위원 dkcho@mju.<span style="line-height:1.6">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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