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경기 회복을 체감하려면 적어도 6%대의 경상성장률은 유지해야 합니다.”(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경상성장률 6%’가 최경환 경제팀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사내유보금 과세와 배당소득세 인하 등 이른바 ‘가계소득 증대를 위한 3종 세트’와 규제 완화 및 각종 경제활성화 정책이 모두 이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총집결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는 2012년 하반기부터 지속되고 있는 1%대의 저물가가 투자와 소비 부진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경제운용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성장목표 ‘실질성장률’→‘경상성장률’ 이동
정책 당국자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뜻하는 실질성장률에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더한 ‘경상성장률(명목 GDP 증가율)’ 지표를 거론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정부는 그동안 정책운용 목표로 경상성장률에서 물가상승분을 뺀 ‘실질성장률’을 주로 써왔다.
최 부총리는 최근 한경밀레니엄포럼에서 내수 부진과 세수 부족 등을 우려하며 “4% 실질성장률과 2% 중반의 물가상승률을 더해 경상성장률이 6%는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올해 실질성장률을 3.7%로 보고 있다. 따라서 경상성장률이 6%대가 되려면 물가상승률이 2% 중반은 돼야 한다.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1.6%에 그친다. 올해 실질성장률 3.7%를 달성할 때 경상성장률은 5.3%(1.6%포인트+3.7%포인트) 정도다.
저물가는 세금 수입에도 ‘악재’
물론 물가를 단기에, 인위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안은 거의 없다. 최 부총리가 경상성장률 지표를 강조하고 나선 배경에는 최근 저물가가 심각한 내수 부진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따라서 물가상승률을 다시 2%대로 올려 놓으려면 투자 소비 등 총 수요를 진작시켜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는 저물가가 경제심리를 낮추고 이것이 다시 투자와 수요를 부진에 빠지게 하는 악순환을 우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시각은 물가 조절 당국인 한국은행과 다소 온도 차가 있다. 한은은 최근 저물가가 수요 위축보다는 원·달러 환율 및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 등과 같은 공급적 요인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때문에 한국 경제가 저물가의 병리적 현상인 ‘디플레이션’에 빠져들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이다.
윤면식 한은 통화정책국장은 “저물가를 예측한 경제주체들이 소비를 미루면 디플레가 되는데 아직 이 같은 징후는 없다”고 진단했다. 정부도 이 같은 진단에 정색하면서까지 반박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과 같은 투자 및 소비 부진이 이어질 경우 경제가 디플레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점을 되풀이 강조한다.
정부가 경상성장률을 강조하는 또 다른 배경은 세수 부족이다. 세금은 물량이 아니라 가격 기준으로 매기기 때문에 물가가 낮을수록 세수 확대에 불리하다. 기획재정부는 물가상승률이 1%포인트 떨어질 때마다 세수가 3조원 감소한다고 추산한다.
한국 경제 구조개혁 필요
경상성장률의 부활이 한국 상황만은 아니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선진국에선 통화정책 목표로 경상성장률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2010년 즈음부터 나왔다”고 소개했다. 대다수 중앙은행은 물가안정 목표를 두는데, 금융위기 이후 저물가가 계속되자 목표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물가와 성장률을 아우르는 경상성장률을 새 목표로 두면 디플레 위기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완화 정책을 쓸 수 있게 된다.
물론 경상성장률 6%를 달성하려면 물가만 끌어올려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한은 관계자는 “4%대 실질성장률을 달성하려면 현재 3%대인 잠재성장률도 끌어올려야 한다”며 “그러려면 한국 경제 전반의 구조개혁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반대로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해 인플레이션율이 0% 이하(마이너스 인플레이션)이면 디플레이션이라고 일컫는다.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을 더 위험한 현상으로 간주한다. 과거 세계 대공황 등이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은 주로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총체적 수요의 급격한 감소에 의해 초래된다. 소비자나 기업이 소비와 투자를 줄이기 때문에 생산된 상품은 팔리지 않는다. 상품의 재고가 급증하면 생산자는 가격을 낮추고 생산을 줄이면서 경기가 계속해서 나빠질 수 있다.
김유미/마지혜 한국경제신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 일본보다 심각한 低물가…한국은행 중기 목표치도 밑돌아
한국은행이 중기 목표(2013~2015년)로 삼는 물가상승률은 연 2.5~3.5%. 하지만 실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2년 6월부터 줄곧 그 하단을 밑돌았다. 적정 물가 수준을 놓고 논쟁이 가열되면서 한은의 고민도 깊다.
올해 2분기 물가상승률(1.6%)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1%보다 크게 낮다. 지난해 4분기부터는 일본의 물가상승률에도 뒤처지기 시작했다. 물가가 낮다보니 경상성장률도 2011년(5.3%) 2012년(3.4%)2013년(3.7%) 내내 6%를 밑돌았다.
이 때문에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를 현실에 맞게 하향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저출산과 잠재성장률 하락 등 구조적인 저물가 요인을 지적하기도 한다.
한은 안에서도 2016년부터 적용될 새 물가 목표를 지금보다 낮출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한은 관계자는 “선진국 중앙은행의 물가 목표는 2%, 신흥국은 5~6%인데 한국은 그 중간쯤에서 낮아지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부담도 있다. 일반인의 체감물가를 반영하는 기대인플레이션은 2%대 후반에서 거의 내려오지 않고 있다. 선진국의 기대인플레는 2%대 초반이다. 한은 관계자는 “1970~1980년대 경제성장기에 물가 급등을 겪은 서민들은 ‘인플레 트라우마’가 여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가안정 과제가 뒤로 물러나긴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소규모 개방경제의 특성상 국내 물가는 환율 변동에 민감하다. 구제역이나 태풍, 가뭄 등 공급 요인 역시 언제든지 물가를 흔들 수 있는 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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