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병훈 기자 ] “상고법원 설치의 명분으로 전원합의체 활성화를 꼽지만 똑같은 사람(서울대 법대 출신 50대 판사)만 대법관이 되는데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상고법원 설치에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상고법원에 찬성하는 답변이 54.8%로 나왔다. 변호사들 절반 이상이 상고법원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반대(42.9%)도 만만치 않았다. 주관식 문항을 보면 실질적인 반대 이유를 적기보다는 법원에 대한 불신을 질타하는 글이 많았다. 이런 얘기의 진실 여부를 떠나 법원에 대한 불신이 깊다는 데 새삼 놀랐다.
법원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지난 24일 대법원이 주최한 ‘상고제도개선 공청회’에서 기자는 한승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에게 “법원을 믿지 못하겠다는 절반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한 실장은 “법원 스스로를 위해서 상고법원을 설치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라며 ‘믿고 맡겨달라’는 뜻으로 얘기했다. 최근 양승태 대법원장이 “법원과 법관의 순수성·진정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얘기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믿지 못하겠다는데 덮어놓고 그냥 믿어달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모양새다.
대법원은 “대법원이 정책법원으로서 중요한 사건을 집중 심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작은 사건들을 처리해줄 별도의 상고법원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대법원과 국민의 인식 간에 괴리가 있다. 공청회를 지켜본 모 변호사는 “작은 사건을 심도 깊게 다루기 위해 상고법원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작은 사건은 대법원의 ‘급’에 안 맞아 덜어내고 싶다고 말하니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아무리 작은 사건이어도 피고인 입장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큰일이다. 이런 게 불신의 원인은 아닌지 대법원은 생각해봐야 한다.
‘법원의 신뢰 위기’는 새 얘기가 아니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최근 실시한 ‘국가기관 신뢰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법원은 국회에 이어 뒤에서 두 번째였다. 상고법원 설치보다 더 중요한 건 법원의 신뢰회복이다.
양병훈 지식사회부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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