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상승·경제개발 맞물려 이슬람 금융 영향력 커져
이자 지급 금지한 율법 따라 배당금·임대료로 수익 주는
수쿠크가 가장 많이 활용돼
건물 등 실물자산 담보로 발행…수익률 높고 투자 위험성 낮아
홍콩 10억弗 수쿠크 발행에 50억弗 투자자금 몰리기도
[ 김은정 기자 ]
“이슬람 금융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류로 올라선 분위기다.” 최근 비(非)이슬람 국가들의 이슬람 채권(수쿠크) 발행 행렬을 두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같이 평가했다. 이슬람 금융시장이 빠르게 커지면서 자금조달 수단으로 수쿠크를 선택하는 정부와 기업이 늘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간)엔 룩셈부르크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국가 중 처음으로 2억유로(약 2680억원)어치 5년 만기 수쿠크를 발행했다. 기관투자가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투자를 희망하는 글로벌 자금만 발행 예정 금액의 두 배에 달했다. 홍콩이 지난달 10일 10억달러(약 1조600억원) 규모로 발행한 5년 만기 미국 달러화 표시 수쿠크에도 발행금액의 5배에 달하는 50억달러의 투자자금이 모였다. 27만명의 이슬람교인이 살고 있는 홍콩은 수쿠크 발행을 위해 작년 7월 세법까지 개정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지난달 17일 5억달러어치 수쿠크를 발행했다.
2000년대 들어 이슬람 금융 본격화
이슬람 지역은 자원이 풍부하지만 대내외적인 혼란 등으로 자원개발을 위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그만큼 금융시장의 발전이 더뎠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이 지역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 유가 상승과 이슬람 국가들의 경제개발 움직임이 맞물리면서다. 이슬람 국가들은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수쿠크 발행 등을 통해 조달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이슬람 지역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요 자금 공급처로도 각광받았다. 글로벌 헤지펀드와 자산운용사들은 ‘오일 달러’를 유치하기 위해 이슬람 법인을 설립할 정도로 적극성을 보였다.
이슬람 금융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는 건 수쿠크다. 수쿠크는 이자 지급을 금지한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따라 이자 대신 배당금이나 부동산 임대료 등의 형태로 수익을 돌려주는 금융상품이다.
일반 채권은 계약 시점에서 원금과 이자 지급을 약정한다. 이에 비해 수쿠크는 고정적인 이자개념 없이 건물 등 기초자산의 처분 결과에 따라 수익을 나눠 갖는다. 시장 상황이 나빠져 투자자산의 가격이 하락하면 수익률이 뚝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과거 사례들을 분석한 결과 수익률 변동폭이 우려만큼 크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졌다.
실물자산을 담보로 발행되기 때문에 투자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으면서 수익률은 미 국채 등 안전자산에 비해 높다. 지난달 홍콩의 수쿠크는 5년 만기에 연 2.005%의 수익률로 발행됐다. 만기가 같은 미 국채 수익률이 연 1.7%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절대 수익률에서 투자매력이 크다.
작년 수쿠크 발행규모는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 시사로 아시아 금융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640억달러에 머물렀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올해 수쿠크 발행 규모는 2012년의 830억달러를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중동 머니’ 둘러싼 각국 신경전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올해는 비이슬람권 수쿠크 발행시장 원년”이라고 할 정도로 최근 비이슬람권 국가와 기업들의 수쿠크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다. 이 같은 움직임의 이면에는 단순한 자금조달뿐 아니라 커지는 이슬람 금융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이슬람 금융시장은 최근 8년간 4배 이상 성장했다. 수쿠크를 비롯해 전체 이슬람 금융시장규모는 올해 2조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글로벌 회계컨설팅회사 언스트앤영은 2018년까지 이슬람 금융시장이 3조4000억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다 보니 이슬람국가들 외에 영국 등 서방 국가도 이슬람 금융시장 선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2년 첫 수쿠크를 발행한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리적·문화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이슬람 금융을 핵심 산업으로 키우고 있다.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면세 등의 다양한 혜택을 주는 정책을 펴고 있다. 가톨릭을 국교로 삼고 있는 필리핀은 주류와 돼지고기 관련 사업 등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기업을 제외한 47개 업체로 구성된 이슬람주가지수와 이에 연동하는 상장지수펀드(ETF)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일본은 2008년 은행법 개정을 통해 이슬람 금융을 허용했다. 일본 4대 금융그룹을 중심으로 이슬람 금융 관련 사업을 준비하는 데 한창이다.
지난 6월 서방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2억파운드(약 3360억원)어치 수쿠크를 발행한 영국은 당시에 “서구 금융시장에서 이슬람 금융의 ‘허브’가 되겠다는 영국 정부의 의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도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로드쇼를 진행한 뒤 지난달 16일 5000만달러어치 5년 만기 수쿠크를 발행했다. 골드만삭스는 일찌감치 이슬람 금융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눈치 채고 이슬람 금융 부문의 전문성 확대에 주력해왔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슬람 금융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이 대규모 기간산업과 부동산 개발 투자를 계속하고 있는 데다 대형 헤지펀드를 포함한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의 수쿠크 투자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다만 이슬람 금융의 국제 기준과 거래 규칙이 제각각인 점은 개선돼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슬람 금융은 교리 해석 차이로 인해 지역마다 세부적인 규칙이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며 “국제적인 기준을 통일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이자 지급 금지한 율법 따라 배당금·임대료로 수익 주는
수쿠크가 가장 많이 활용돼
건물 등 실물자산 담보로 발행…수익률 높고 투자 위험성 낮아
홍콩 10억弗 수쿠크 발행에 50억弗 투자자금 몰리기도
[ 김은정 기자 ]
“이슬람 금융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류로 올라선 분위기다.” 최근 비(非)이슬람 국가들의 이슬람 채권(수쿠크) 발행 행렬을 두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같이 평가했다. 이슬람 금융시장이 빠르게 커지면서 자금조달 수단으로 수쿠크를 선택하는 정부와 기업이 늘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간)엔 룩셈부르크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국가 중 처음으로 2억유로(약 2680억원)어치 5년 만기 수쿠크를 발행했다. 기관투자가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투자를 희망하는 글로벌 자금만 발행 예정 금액의 두 배에 달했다. 홍콩이 지난달 10일 10억달러(약 1조600억원) 규모로 발행한 5년 만기 미국 달러화 표시 수쿠크에도 발행금액의 5배에 달하는 50억달러의 투자자금이 모였다. 27만명의 이슬람교인이 살고 있는 홍콩은 수쿠크 발행을 위해 작년 7월 세법까지 개정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지난달 17일 5억달러어치 수쿠크를 발행했다.
2000년대 들어 이슬람 금융 본격화
이슬람 지역은 자원이 풍부하지만 대내외적인 혼란 등으로 자원개발을 위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그만큼 금융시장의 발전이 더뎠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이 지역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 유가 상승과 이슬람 국가들의 경제개발 움직임이 맞물리면서다. 이슬람 국가들은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수쿠크 발행 등을 통해 조달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이슬람 지역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요 자금 공급처로도 각광받았다. 글로벌 헤지펀드와 자산운용사들은 ‘오일 달러’를 유치하기 위해 이슬람 법인을 설립할 정도로 적극성을 보였다.
이슬람 금융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는 건 수쿠크다. 수쿠크는 이자 지급을 금지한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따라 이자 대신 배당금이나 부동산 임대료 등의 형태로 수익을 돌려주는 금융상품이다.
일반 채권은 계약 시점에서 원금과 이자 지급을 약정한다. 이에 비해 수쿠크는 고정적인 이자개념 없이 건물 등 기초자산의 처분 결과에 따라 수익을 나눠 갖는다. 시장 상황이 나빠져 투자자산의 가격이 하락하면 수익률이 뚝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과거 사례들을 분석한 결과 수익률 변동폭이 우려만큼 크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졌다.
실물자산을 담보로 발행되기 때문에 투자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으면서 수익률은 미 국채 등 안전자산에 비해 높다. 지난달 홍콩의 수쿠크는 5년 만기에 연 2.005%의 수익률로 발행됐다. 만기가 같은 미 국채 수익률이 연 1.7%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절대 수익률에서 투자매력이 크다.
작년 수쿠크 발행규모는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 시사로 아시아 금융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640억달러에 머물렀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올해 수쿠크 발행 규모는 2012년의 830억달러를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중동 머니’ 둘러싼 각국 신경전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올해는 비이슬람권 수쿠크 발행시장 원년”이라고 할 정도로 최근 비이슬람권 국가와 기업들의 수쿠크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다. 이 같은 움직임의 이면에는 단순한 자금조달뿐 아니라 커지는 이슬람 금융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이슬람 금융시장은 최근 8년간 4배 이상 성장했다. 수쿠크를 비롯해 전체 이슬람 금융시장규모는 올해 2조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글로벌 회계컨설팅회사 언스트앤영은 2018년까지 이슬람 금융시장이 3조4000억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다 보니 이슬람국가들 외에 영국 등 서방 국가도 이슬람 금융시장 선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2년 첫 수쿠크를 발행한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리적·문화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이슬람 금융을 핵심 산업으로 키우고 있다.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면세 등의 다양한 혜택을 주는 정책을 펴고 있다. 가톨릭을 국교로 삼고 있는 필리핀은 주류와 돼지고기 관련 사업 등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기업을 제외한 47개 업체로 구성된 이슬람주가지수와 이에 연동하는 상장지수펀드(ETF)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일본은 2008년 은행법 개정을 통해 이슬람 금융을 허용했다. 일본 4대 금융그룹을 중심으로 이슬람 금융 관련 사업을 준비하는 데 한창이다.
지난 6월 서방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2억파운드(약 3360억원)어치 수쿠크를 발행한 영국은 당시에 “서구 금융시장에서 이슬람 금융의 ‘허브’가 되겠다는 영국 정부의 의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도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로드쇼를 진행한 뒤 지난달 16일 5000만달러어치 5년 만기 수쿠크를 발행했다. 골드만삭스는 일찌감치 이슬람 금융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눈치 채고 이슬람 금융 부문의 전문성 확대에 주력해왔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슬람 금융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이 대규모 기간산업과 부동산 개발 투자를 계속하고 있는 데다 대형 헤지펀드를 포함한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의 수쿠크 투자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다만 이슬람 금융의 국제 기준과 거래 규칙이 제각각인 점은 개선돼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슬람 금융은 교리 해석 차이로 인해 지역마다 세부적인 규칙이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며 “국제적인 기준을 통일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