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세월호'에 올라탄 정치인들의 명(明)과 암(暗)

입력 2014-10-06 10:58  


(손성태 정치부 기자,국회반장) 304명의 생떼 같은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침몰 참사 후 6개월간 한국정치도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 기간 동안 단 1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한 채 정치권이 지난 1일 가까스로 내놓은 세월호특별법 협상안은 조정과 타협의 정치부재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례다. 유가족은 물론 여야 누구도 만족하지 않은 협상안은 국민의 ‘세월호피로감'에 편승, 골든타임을 또 한 번 놓친 ‘졸속법안’이란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

가정이지만 두번(6.4지방선거와 7.30재보궐선거)의 선거가 없었다면 세월호 참사 수습을 비롯해 진상조사및 재발 방지를 위한 세월호특별법은 훨씬 신속하게,지금보다 알차고 정교하게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정치무용론'을 곱씹게 하는 대목이다.

전대미문의 세월호 참사와 후폭풍은 여야 정치권의 지형을 바꿔놨다. 거물급 정치인들도 희비가 엇갈렸다.

세월호특별법 협상 과정에서 유가족의 공적 1,2호로 지목됐던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여권 지지층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특히 이 원내대표는 세월호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 기소권을 줄 수 없다는 원칙을 끝까지 밀어부친 데다, 협상 파트너인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당내 탄핵 빌미가 됐던 1,2차 협상을 성사시키는 노련함을 뽐냈다. 청와대와 여권이 수용 가능한 최종 협상안의 1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이 원내대표란게 여권내 평가다.

그는 지난 26일 여당 단독국회가 정의화 국회의장의 산회 선포로 무산되자 곧바로 소집된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직을 던졌다. 의원들의 박수로 끝난 ‘쇼’는 ‘소신과 뚝심’ 정치인이란 그의 이미지를 또 한번 각인시켰다. 그는 2009년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움직임에 반대해 충청남도 도지사직을 사퇴했었다.

뿐만 아니다. 국회파행의 책임을 야당으로 돌리고, 협상 파트너를 궁지로 모는 효과까지 나타났다. 주말내내 박 원내대표의 전화를 무시하다, 29일 서청원 최고위원의 권유로 어쩔수 없이 협상 테이블에 앉는 모양새를 취하기도 했다. 이번 세월호특별법 협상으로 그의 당내 입지는 더 탄탄해졌다는 게 여권내 분석이다. 이 원내대표의 차기 목표는 국무총리라는 설이 여권 내에서 흘러나온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협상으로 대통령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데다 청문회 통과 가능성 등을 감안할 때 차기 국무총리 1순위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반해 협상 파트너인 박 원내대표는 ‘천당과 지옥’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지난 5월 원내대표 선거에서 압승했고, 스스로 ‘독배'란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당대표(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았을 때만 해도 그에겐 ‘포스트 박근혜’의 영상이 오버랩됐다.

하지만, ‘뭔가를 보여줘여 한다’는 과욕이 화를 불렀다.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2번의 협상 실패와 새누리당 출신 이상돈 교수의 비대위원장 영입 시도는 그의 당내 지지자들까지 등을 돌리게 했다.급기야 탈당까지 시사하면서 잠적, 정치적 리더십이 밑천을 드러냈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정계입문 후 10여년 간 쌓아온 정치적 자산도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그는 2일 세월호특별법 협상까지 기한을 못박았던 시한부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았다. 박 원내대표는 동료 의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책임이란 단어에 묶여 소신도 체면도 자존심도 다 버리고 걸어온 힘든 시간이었다"며 “'세상에서 가장 슬픈 법' 이름만 법일 뿐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보내는 가슴 아픈 편지 같은…이런 법을 만드는 일은 이제 더는 없어야겠다"고 말했다.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도 세월호특별법 협상의 주역이다. 유가족들이 협상장에서 배석을 거부할 정도로 악명을 떨치긴 했지만, 주요 고비마다 야당과 유가족으로 넘어갈 뻔 했던 협상 방향을 여러 차례 돌려놓은 게 바로 김 수석부대표였다.

특히 지난 30일 유가족이 수사권 기소권을 포기하면서 여야 협상이 임박했다는 보도를 정면 부인하면서 야당과 유가족을 끝까지 몰아부친 전략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세월호특별법 협상과정에서 문희상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의 리더십도 빛났다. 그는 김무성 대표를 협상 테이블에 끌어낸데 이어 당 강경파들에 대한 엄중경고 등 사전작업을 통해 박 원내대표 협상에 힘을 실어줬다.

이에 비해 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의장과 심재철 의원(세월호특위 위원장) 등은 유가족을 자극하는 말실수 등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여야 1차 협상에 포문을 연 후 대여 강경투쟁을 이끌었고,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동조단식에 나섰던 문재인 의원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유족 요구를 전혀 반영 못한 협상결과에 대해 강경론을 외쳤던 문 의원이 어느정도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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