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담 뺑덕’ 정우성이라는 클래식

입력 2014-10-13 12:20  


[최송희 기자 / 사진 장문선 기자] 클래식한 남자. 이보다 더 그에게 잘 어울리는 수식이 있을까. 이를테면 눈먼 아버지를 위해 몸을 던진 청이와 고약한 새어머니 뺑덕, 그리고 무능력한 아버지 심학규의 이야기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알아야 할 고전 같은.

최근 영화 ‘마담 뺑덕’(감독 임필성) 개봉 전 한경닷컴 w스타뉴스와 만난 배우 정우성은 고전의 새로운 해석, 또한 그것을 비틀었을 때 풍겨져 나오는 ‘낯선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극 중 정우성은 한 여자의 인생을 망가트린 남자, 심학규를 연기했다. 욕망에 눈이 먼 그는 자신이 저질러놓은 일을 두고 멀리 달아나버렸고, 여자는 그를 뒤쫓아 간다. 결국 여자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남자. 시나브로 죽어가는 그 남자에게 남은 욕망이란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촬영할 땐 심학규의 무드에 젖어있으니 몰랐는데, 요즘 인터뷰를 하면서 학규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물리적으로 학규와 저는 나이대가 비슷하니까요. 사회적 위치나 가치관, 철학적으로 봤을 때 탄탄하고 힘이 센 나이거든요. 이럴 때 더 조심해야겠구나 생각하곤 하죠. 실수한 건 없는지 돌아보게 되고요. 학규로 인해서 저를 돌아보게 되었다고 할까.”


매표소의 순진한 처녀를 욕망에 눈뜨게 만들고, 자신의 일상으로 매몰차게 돌아와 버린 남자. 정우성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배우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도 “왜 이래 라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의 에고이스트.

“덕이를 혼자 여관방에 두고 나가는 장면은 정말…. 그냥 애를 가졌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덕이가 너무 불쌍했어요. 그걸 관통해서 심정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심학규의 입장에서는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정면충돌하면서, 그 감정을 표현할 때 재미를 느꼈어요.”

그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관객들에게 심학규라는 인물을 이해시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졌음으로. 그는 심학규가 가진 수많은 ‘결’들을 보았다. 과정이 너무도 끈질기고 고달팠기에, 관객들에게 그 ‘과정’을 손실 없이 전달하고 싶었을 것 같았다.

“심학규에게 신체적, 경제적인 결함이 오더라도 그 에고(ego)에서 오는 우아함은 잃지 않으려고 했어요. 오히려 그것을 더 부각시키면서 망가져가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스스로 자신을 지키려는 몸부림 같은 것들. 더 처량해 보이도록이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정우성은 ‘에고(자아)’에 대한 말을 자주, 많이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심학규라는 인물은 스스로에 대한 도취, 애정을 빼놓고는 완전한 캐릭터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베드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예창작과 교수가 너무 몸이 좋은 거 아니에요?”라는 물음을 던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런 얘기 나올까봐 운동을 안 했어. (웃음) 일단 심학규라는 인물은 철저한 에고이스트니까요. 에고의 극이라고 할까. 중간에 눈이 멀어 가는데도, 운동을 하잖아요? 단면의 여지를 둔 거죠. 그리고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하는데 ‘신의 한 수’가 막 끝난 참이었어요. 보기 좋게 운동을 더 한 건 아니었는데. 보이기 위한 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


‘마담 뺑덕’의 전체적 분위기는 영화의 베드신과도 상응한다. 베드신은 거칠고, 매끄럽지 않지만 그것으로 하여금 날 것, 본질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전 ‘모텔 선인장’에서도 파격적인 베드신이 있었잖아요? ‘마담 뺑덕’과 비교했을 때 어떤 게 다른가요?” 그에게 묻자 정우성은 대번에 “그땐 멋모르고 했고”라고 답한다.

“‘비트’ 끝나고 ‘모텔 선인장’을 촬영했어요. 저예산 영화고 노 개런티로 출연했는데 베드 신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촬영감독님이 크리스토퍼 도일이었는데 그냥 그 사람이랑 촬영해보고 싶어서 찍었던 거예요. ‘마담 뺑덕’은 사실적으로 더 치열해야하니까. 감정을 전달하는 것에 더 치중했고요.”

또한 ‘모텔 선인장’과 ‘마담 뺑덕’이 다른 것은 “인터넷”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면서 “이만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게 없었다”는 정우성이지만 팬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리액션에 고민했으면 과감할 수 없”었기에.

“40대 초반의 남자의 베드신, 뭐 그런 것에 기대나 궁금증이 좀 있지 않을까요? 20대는 그냥 경험을 쌓아나가는 거니까. 어린 여성과 중년 남성의 로맨스 같은 것들이나 40대의 정우성이 벗는다는 것. (웃음) 이 남자를 바라보는 궁금증이 너 넓어질 것 같아요.”

영화를 본 이들이 자주 언급하는 것은 베드신과 장님 연기다. 시력을 잃어가는 심학규는 덕이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그의 모진 행동에도 모른 척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눈이 멀어가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는 칭찬을 건네자, 그는 씩 웃으면서 “동공 연기?”라고 장난을 건다.

“동공의 위치가 달라지는 걸 신경 썼었죠. 특히 덕이가 세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났을 때, 시력을 잃어가는 초반이니까 상대가 뿌옇게 보이잖아요. 이걸 관객들이 믿어줄 수 있을까. 고민이 있었죠.”


이전 작품에서만 하더라도 “캐릭터에서 빨리 헤어나오는 편”이라고 했던 그 답지 않게, 정우성은 심학규에 대한 잔향에 취해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일까?

“그만큼 학규를 이해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던 것 같아요. 깊은 감정을 끌어내려고 했으니까. 덕이가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베드신을 하는데, 그게 저 때문이잖아요? 그런 깊은 괴로움 같은 것들이 느껴져서 오래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한마디, 한마디에서 전작과는 다른 농도의 애정이 느껴졌다. “심학규에 대해 어느 정도 만족하세요?” 물었더니 그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한다.

“캐릭터를 구축하다 보면 작은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학규라는 캐릭터를 완성했을 때, 그리고 모든 밸런스를 고려했을 때 실수를 덜 남겨놨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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