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순신 기자 ] 아일랜드 정부가 애플, 구글, 화이자 같은 글로벌 기업이 이용해온 조세 회피의 경로 차단에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5일 아일랜드 정부가 내년부터 다국적 기업이 세금 회피를 위해 활용해 온 ‘더블 아이리시(Double Irish)’ 회계 기법이 소용 없도록 세법을 개정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더블 아이리시란 아일랜드의 독특한 세법을 이용해 글로벌 기업이 아일랜드에 두 개의 법인을 세워 세금을 줄여온 방식을 말한다.
마이클 누난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내년부터 아일랜드에 새로 설립하는 법인은 ‘더블 아이리시’ 방식을 써도 정상적인 법인세를 내야 한다”며 “이 방법을 쓰고 있는 기존 기업에는 2020년부터 새 규정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일랜드의 법인세율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다”며 “지식재산권으로 발생한 이익에 대해서는 기존 법인세율보다 더 낮은 세율을 부과하는 제도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아일랜드의 법인세율은 과세표준의 12.5%에 불과해 미국(최대 39.2%)에 비해 크게 낮다. 각종 공제제도가 많아 실효세율은 이보다 훨씬 낮다. 따라서 많은 기업은 아일랜드를 세금회피 통로로 삼아왔다. 그 결과 아일랜드는 많은 다국적 기업을 유치할 수 있었고, 1990년대 후반부터 금융위기 이전까지 연 10%에 육박하는 고성장을 유지했다.
FT는 아일랜드가 기업의 조세회피를 방관해 다른 나라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압력이 거세진 것이 이번 결정의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유럽연합(EU)의 독점 규제 당국인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6월 애플과 아일랜드 정부 사이에 법인세율에 관한 이면계약이 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집행위원회는 애플이 이면계약을 통해 2%대의 법인세만 납부해 높은 법인세를 내고 있는 경쟁사들과 불공정한 경쟁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EU는 또 아일랜드에 더블 아이리시를 막지 않으면 이 방법의 불법성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더블 아이리시
Double Irish.다국적 기업이 법인세율이 낮은 아일랜드에 해외사업 총괄 법인을 세워 지식재산권 수입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이익을 집중시킨 뒤 해당 법인의 근거지를 조세회피처에 두고 세금 납부액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아일랜드 세법상 이를 활용하려면 두 개의 법인이 필요해 더블 아이리시라고 불린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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