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어텍스 개발한 고어社
바람 잘 통하는 고어텍스
땀 배출하고 비는 막아줘
창업자 고어가 지하실서 개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라인홀트 메스너가 입어 유명
첫 우주왕복선 우주복
남극탐험가들 필수 방한복
내구성·구겨짐·방수성…
시제품 100여가지 테스트
기능 떨어지면 교환·환불
[ 강영연 기자 ]
아웃도어 제품을 한 번쯤 구매해본 사람은 ‘고어텍스’란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2007년 영국 인디펜던스지의 ‘세계를 바꾼 101가지 발명품’으로 선정되기도 한 고어텍스는 땀을 배출하고 비는 막아주는 등의 기능으로 아웃도어 제품에 꼭 필요한 기능을 한다. 고어텍스가 들어갔느냐 안 들어갔느냐에 따라 등산복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고어텍스는 고어사가 1972년 개발한 제품이다. 설립 당시 창업자 윌버트 고어의 지하실에서 시작된 고어사는 창업 57년째인 지금 세계 30개 지역, 45개 사업장을 두고 종업원 1만명이 근무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했다. 지난해 매출은 30억달러(약 3조2000억원)에 달한다.
작은 실수에서 나온 큰 발견
고어사는 1958년 화학 엔지니어였던 고어가 자신의 성을 따 설립한 회사다. 고어는 미국의 종합화학회사인 듀폰에서 합성수지인 폴리테트라 플루오로에틸렌(PTFE)을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미국 델라웨어주 뉴어크에 있는 델라웨어대 화학공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장남 밥 고어는 아버지에게 전선을 PTFE로 감아 절연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고어는 아들의 아이디어가 사업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1958년 자택 지하실에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아이디어는 성공적이었다. 이 제품은 절연 전선케이블인 멀티텟이란 제품으로 출시돼 인기를 얻었다. 우주왕복선 아폴로 11호에 사용된 부품에도 쓰였다. 하지만 성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컴퓨터가 소형화되면서 컴퓨터 전선시장이 점점 축소된 것이다. 다른 사업을 모색하던 고어사는 PTFE를 이용해 얇은 테이프를 만들면 배관공 등에게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개발을 시작했다.
제품 개발은 쉽지 않았다. PTFE가 플라스틱 재질이므로 열을 가해서 천천히 당겨주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일반 플라스틱과 달리 계속 끊어졌다. 거의 포기 상태에서 실수로 테이프를 확 뗐을 때였다. 그동안 늘어나지 않던 원료는 10~20%가 아니라 1000%에 가깝게 늘어났다.
이렇게 늘어난 합성수지는 강한 강도는 유지하면서도 통기성은 뛰어났다. 공기가 통과할 수 있는 구멍이 뚫린 분자구조였기 때문이다. 이 구멍으로 입자가 작은 수증기 형태의 땀은 통과할 수 있었고, 비와 같은 물은 막는 독특한 특징도 갖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 고어사를 세계적인 회사로 발전시킨 고어텍스의 시작이었다.
‘메이드 바이 고어텍스(made by Goretex)’
고어사는 발견한 소재를 원단으로 개발해 1972년 고어텍스 섬유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고어사의 성공시대가 시작됐다. 1976년 고어텍스를 이용해 만든 제품이 미국 얼리윈터스사에서 나온 후 1978년 고어텍스 재킷을 입은 라인홀트 메스너가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무산소 등정하는 데 성공하면서 일반인에게도 고어텍스 소재의 우수성이 알려졌다. 1981년에는 최초 우주왕복선인 컬럼비아호 우주비행사들이 우주복 소재로 고어텍스를 이용했다. 1990년 남극대륙횡단팀, 2005년 남극 사우스 조지아 카약 탐험대 등 오지 탐험가들이 고어텍스 기능성 의류를 애용했다.
전문가들이 고어텍스를 믿고 사용하게 된 데는 고어사의 철저한 품질관리가 뒷받침했다. 고어텍스는 연구에서 디자인, 생산까지 엄격한 품질 관리를 통해 완성된다. 고어텍스 자켓의 시제품은 100여가지 실험실 테스트와 현장 테스트를 거쳐 소비자를 만나게 된다.
먼저 내구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울이나 사포 등을 이용해 천을 반복해서 문지르는 마틴데일 테스트를 실시한다. 몇 시간씩 구기고 당기는 것을 반복한 후 방수 기능이 그대로 작용하는지 확인하는 구겨짐 테스트, 방수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이슬비부터 호우까지 다양한 우천 환경에서 방수가 되는지 확인하는 레인 룸 테스트 등도 반드시 거치는 절차 중 하나다. 고어사는 제품 테스트 방법을 직접 개발하고, 특허 출원할 정도로 제품 성능 관리 및 품질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고어텍스를 그 자체로 브랜드로 만든 것도 고어사의 전략이다. 원료 제조사로 납품 회사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직접 사용하는 소비자에게 고어텍스를 알리는 데 노력한다. 지금도 고어텍스는 ‘개런티드 투 킵 유 드라이(GUARANTEED TO KEEP YOU DRY)’라는 책임제를 시행하고 있다. 고어텍스로 만든 제품을 입거나 세탁했을 때 기능이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면 고어사에 직접 불만을 접수하면 된다. 고어사는 제품의 성능을 실험하고, 기능이 떨어졌을 경우 수선, 교환, 환불해준다.
상사도 부하도 없는 평등 조직
고어사는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직원들을 믿고, 그들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창업주인 고어는 “인간에 대해 믿음을 가지면 작은 조직에서 강한 힘이 나온다”고 늘 강조했다. 고어사는 완벽한 수평 조직으로 상사나 직급이 없고 모두가 동료다. 일반 회사에서는 직급에 따라 업무가 주어지지만 고어사에서는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동료와 리더가 함께 일한다. 아이디어는 상사의 지시가 아닌 회의를 통해 결정하고, 이를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고어사에는 큰 조직도 없다. 한 조직이 너무 커지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공장이나 한 조직이 200명을 넘으면 둘로 쪼개 작은 조직으로 만든다. 작은 조직 내에서 서로 잘 알기 때문에 필요한 역량을 가진 사내 전문가들을 파악해서 프로젝트마다 팀을 조직하고 효율적으로 일한다. 고어는 “쪼개라. 그래야 더 다양해질 수 있다”며 “작은 조직에서 모든 구성원이 오너십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일할 때 창의와 혁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고어사 직원들은 고어의 직원 참여제로 알려진 ‘직원 지주제도’를 통해 주주로서 기업에 참여한다. 매년 직원들은 연봉 외에도 추가로 자신의 전체 연봉의 일정 비율을 자신의 개인 주식계좌로 받는다. 수년에 걸쳐 보유 주식이 지속적으로 늘어난다는 뜻이다. 이런 지분 소유 제도는 직무에 관계 없이 모든 직원에게 적용된다. 직원이 퇴직 이후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로 퇴직 이후에만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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