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맨홀’ 정경호, 정체불명의 남자

입력 2014-10-17 08:42  


[최송희 기자] 정경호의 얼굴은 신기하다. 가장 여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장 날선 인상을 머금고 있다.

배우의 양면성이야 연기력으로도 충분히 그려낼 수 있겠지만, 배우의 얼굴로 하여금 불러일으키는 감정이란 건 연기력과는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열 마디 말 대신, 단 한 번의 시선으로 더 많은 드라마를 그려낼 수 있는 배우. 정경호가 가진 힘은 그가 짐작하는 것보다 더 단단했다.

최근 영화 ‘맨홀’(감독 신재영) 개봉 전 한경닷컴 w스타뉴스와 만난 배우 정경호는 한결 가벼워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막 수철 역을 털어버렸다는 듯.

그도 그럴 것이 극 중 정경호가 맡은 캐릭터는 이성적으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인물이다. 얽히고설킨 미로 같은 맨홀에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한 정체불명의 남자. 도심과 맨홀 아래를 자유자재로 누비며 곳곳에 설치해둔 CCTV를 통해 타깃을 고른 뒤 납치하고 살해하는 수철. 몰입에 있어서도, 연기하면서도 상당한 어려움을 느꼈을 법 했다.

“이런 감정을 처음 느껴봐요.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이잖아요? 거기다 없는 인물을 촬영하려다 보니, 만들어내는 것에 있어서 어려움을 느꼈어요. 머리는 어떻게 할지, 뭘 입을지, 어떻게 생겼고 왜 살인을 저지르는지. 초반에 정한 건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였어요. 어떤 아픔이나 이유 같은 것들이요.”


‘맨홀’은 수철의 감정, 수철의 사연보다는 그에게 쫓기는 연서(정유미)와 수정(김새론)의 감정선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왜 수철이 살인을 저지르는지, 어떤 일을 저지르는 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아닌 상상력을 주로 이용한다. 그것은 수철을 더욱 무섭고, 난폭한 인물로 그리며 효과적인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과거 분량이 꽤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야기가 길어지고,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다만 아이들에 대해서나, 설정적인 부분들은 더 나와도 좋았겠다는 생각들이 들었어요.”

영화 속 수철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그가 왜, 어디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오로지 수철 본인만 알 수 있을 정도다. 관객들은 그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지만, 빈 정보로 인한 오해도 있을 수 있는 인물이다. 이에 정경호는 “캐릭터의 전사는 가지고 있다”며 수철이라는 인물을 완성하기 위한 과정을 알려주었다.

“모든 인물이 자신만의 전사를 가지고 있어요. 자신의 역할에 대한 연대기를 가지고 시작하는 거죠. 하지만 수철은 있어서는 안 될 놈이니까. 악하게 보여야 하는지, 연민을 가지게 해야하는지. 그런 부분에 고민이 많았죠.”

그는 “자신의 생일에 아버지에게 살인 위협을 당하는” 수철의 역할에 있어서, 중심을 기울였던 것은 “어린 시절 트라우마”였다. 감독과 끝없는 논의 끝에 “버림받은 것과 무관심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가진 인물을 그려냈지만, 그의 행위에 대해 “이해를 바라지는 않는”다.
 
“악이라는 게 왜 악이 되었는지,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다 이유가 있지만 그걸 관객에게 다 설명해야한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이유 있는 악행이라고 용서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냥 이런 사람도 있겠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해요.”


정경호에게 ‘맨홀’은 어려운 영화였다. 대사며, 액션, 감정 연기까지 어느 하나 수월한 것이 없었다. “대사가 한 마디도 없었던” 수철이라는 캐릭터를 하나씩 덧붙이기 시작한 것이, 지금 그가 만들어낸 수철의 모습을 만들었다.

“그래도 지금 대사가 조금 있는 편이잖아요? 원래는 하나도 없었어요. 말을 해야 사람들이 이해를 하잖아요. 어떤 마음 상태인지…. (웃음) 감독님은 제게 요구하신 건 가만히 있을 때의 표정이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을 때, 표정이 슬퍼보였으면 좋겠고 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그는 말을 마치면서 손등이며, 손가락의 상처들을 매만진다. ‘맨홀’ 세트장을 달리고, 구르면서 입은 상처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하고 나서는 많이 힘들지 않았어요”라는 그가 “이건 정말 못해먹겠다 싶었다”는 것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바로 수철이 피해 여성들을 무참히 살해할 때였다.

“여자들을 살해하고 소독하는 장면. 영화에는 반이 넘도록 삭제 됐지만 연기할 때는 세세하게 다 했거든요. 너무 무서워서 마네킹으로 하자고 했는데, 카메라에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아…. 막걸리 두 통을 먹고 했어요. 진짜 안 좋은 기분이었어요.”

불편한 장면이었지만 감독님에 대한 믿음으로 해결했다는 그는 신재영 감독과 배우 정유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들에 대한 신뢰는 어느 것으로도 비할 수 없이 단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전 모든 작품을 선택할 때 상대 배우로 정유미를 지목해요. ‘정유미 뭐해?’ ‘정유미는 어때요?’라고. 그냥 정유미가 너무 편해요. (웃음) 유미는 항상 절보고 또라이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그 애도 만만치 않아요. 우리가 10년을 알고 지냈는데, 제대로 작품을 해본 게 거의 없어요. 이번에도 도망치고 잡고…. 서로 맞춰보는 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신재영 감독의 “단편들을 좋아하”고, 앞으로의 차기작 역시 “정유미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그는 농담처럼 이렇게 덧붙인다. “감독님이랑 작품 5개 계약 했어요. 물론 상대배우는 정유미죠.”


앞서 말한 것처럼 정경호는 양면의 얼굴을 가진 배우다. 모성본능을 일으키다가도, 한없이 두려운 상대로 변하곤 한다. “일부러 같은 배역을 피하는 건가요?” 물었더니 그는 쉽사리 “그렇다”고 답한다.

“재미없어요. 소모가 되는 것 같아요. 속된 말로 한 캐릭터를 오래 연기하면 제 연기력이 뽀록날 것 같아요. (웃음) 군대 갔다 와서 가장 고민한 건 나 스스로 뭘 가장 잘할 수 있는지였어요. 전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인물에 빙의해서 빠져나올 수 없고, 그런 걸 잘 모르겠어요. 99프로 작전이고 노력이니까 가능하지, 몰입까지는…. 이 나이 대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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